[Z인터뷰]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아픈 기억이지만 치유되기를"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관객들이 배우 김혜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연기에서 전해지는 진심 때문일 터다. 김혜수가 전하는 대사와 눈빛, 표정은 언제나 호소력 강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연기로 전달한다. 그런 김혜수가 이번엔 누군가에겐 위로를, 그리고 누군가에겐 분노를 담아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김혜수는 이번 작품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을 연기했다. 한시현은 1997년 국가부도의 상황을 처음으로 알리고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인물. 경제 전문가로서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면모부터 계속된 갈등에도 흔들림 없는 돌파력, 위기 상황일수록 원칙을 지키려는 굳은 신념을 지닌 캐릭터다. 

진취적 여성 캐릭터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김혜수와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명감은 아니지만, 고통의 이유를 알리고 싶었다"

‘국가부도의 날’은 아픈 영화다. IMF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를 할퀴고 있는 사나운 발톱과 같다. 하여 당시를 어찌 경험했느냐에 따라 영화를 보는 이는 다시 한번 그날을 떠올린다. 어쩌면 영화가 간신히 아문 상처를 다시 후비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김혜수는 그런 관객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끊임없이 내비쳤다. 그 역시 ‘국가부도의 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짜증 이상의 감정이 치밀었다. 솔직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재로 이용할 이유는 없다. 너무 내상이 심한 분들은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는 거 조차 힘들 수 있다. 그런 타격을 정통으로 맞으신 분들에겐 우리 영화는 너무 경솔하고 무례할 수 있다.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실제 더 강렬한 경험을 하신 분도 계실 거다. 영화를 보며 기억하기 싫은 아픈 시간들을 떠올리실 분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김혜수가 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일종의 부채이자 사명감이었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고 말한다. 김혜수 역시 미처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실체가 존재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건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일이 되고 있다. 우린 너무 많이 당했다.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심지어 삶을 포기한 분도 많았다. 지금까지도 힘들어 하는 분들도 많다. 이렇게 힘든데, 그 실체가 뭔지를 모른다? 그렇다면 고통 받는 이유를 알려드리고 싶었다. 아프겠지만 과거에 이런 원인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생이 힘들었던 게 당신의 탓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금모으기 운동? 당연히 참여했다"

위로는 비단 그 시절에 고통 받은 세대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덧 IMF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사회에 발 딛고 있다. ‘N포 세대’라 불리는 그들은 유례없는 취업난이 제 탓인냥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하며 고군분투 하고 있다.

“지금은 IMF를 전혀 모르는 세대들, 책에 쓰여진 활자로만 접한 사람도 있고, 우리 부모님들의 사정을 말로만 전해 들은 사람도 있다. 낯설고 생경한 일인 거다. 그 세대들에게 그들도 IMF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지금의 위기가 사실 그때 규정된 것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는 걸, IMF가 우리의 삶의 기준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릴 수 있다”

김혜수 역시 IMF 위기를 겪은 사람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직격타를 맞을 일은 없었겠으나, “당시엔 가볍고 경쾌하고 유쾌한 이야기의 작품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없어지는 제작사도 있었겠으나, 그거야 전부터 비일비재 했었던 일이다. 그때 유독 밝은 작품이 많이 나온 건 결국 사람들의 삶이 급변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문득 '김혜수 역시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했을까'가 궁금해졌다. 역시나 “참여했다. 아마 그 당시 안 낸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영화 역시, 결국 IMF는 국민들의 힘으로 극복해나간다고 말한다. 김혜수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위로다.

“영화는 IMF를 거치면서 우리가 입은 내상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도 엄청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까지 재생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금모으기 운동도 그 일환이다. 정말 유례없는 나라다. 위기를 겪을 수 있었던 건 여러분 덕분이라고 전하고 싶었다”

"압도적 카리스마 뱅상 카셀, 판타스틱 조우진"

재미있는 건 ‘국가부도의 날’의 특급 캐스팅, 뱅상 카셀 역시 그 지점에서 우리나라에, 그리고 이 작품에 궁금증을 갖고 출연을 결심했다는 거다. 지금 국제적 위상을 떨치고 있는 K-컬처 역시 그러한 관심에 일조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굉장히 특별하고 신비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김혜수의 전언이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연기자와의 촬영은 어땠을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마 앞으로 다시 할 수 없는 경험일 거다. 엄청난 압력을 전하는 배우였다. 특히 협상신에선 제가 연기를 할 여지가 없었다. IMF 총재라는 권위와 카리스마가 대사톤이나 액션으로 처리하는 게 아닌데도 정말 강압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엄청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사실 경직될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해외에서 특별한 배우가 왔으니 미묘한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IMF 총재에 맞서 국가부도의 최일선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 바로 김혜수가 연기한 한시현이다. 협상 테이블에 한시현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타국에서 온 IMF 총재는 당연했고, 조우진이 연기한 재정국 차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시현을 매도한다. 조우진의 신들린 연기에 김혜수는 눈물까지 흘렸다고. 슬픈 감정이 아닌 분노에 차올라 흐르는 눈물이었다.

“IMF는 엄청나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였다. 기본적으로 선결조건을 건 협상이라는 건 국제법에 어긋난다. 그걸 너무나 쉽게 이야기 했고, 일사천리 속전속결로 결정나는 거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경제 속국으로 만드려는 것은 한시현에겐 정말 충격이었을 거다. 조우진 씨는 정말 판타스틱, 너무 좋은 배우였다. 결국 그 신에서 눈물이 났다. 눈물이 필요한 신이 아니었기에 결국 편집됐다. 저런 것들이 고위관료라니, 너무 화가 났다”

"나의 선택? 윤정학 보다는 한시현"

분노했지만, 비단 애국심은 아니었을 거다. 한시현은 그런 인물이었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더 보수적인 금융조직, 그 안에서 실무를 전임하는 팀장이었다. 여성을 대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유리천장 안에서 자신의 직무를 타인 이상으로 해내는 사람이었다. 당시 사회상에서 보기 힘들 인물, 그리고 지금에도 영화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 강단 있는 여성 캐릭터였다.

그에 반하는 인물은 유아인이 연기한 윤정학이다. 한시현과 마찬가지로 시국의 위태함과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끝으로 우문이지만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과연 김혜수라면 같은 상황 속에 한시현처럼 대의를 향해 걸어갔을까? 아니면 윤정학처럼 현실을 선택했을까?

“그런 거대한 선택의 순간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한시현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면엔 정학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현실은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윤정학도 악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윤정학은 아마 권력층에게 많이 속고 살았나 보다. 그렇기에 국가의 언론플레이에도 ‘난 절대 안 속아’라고 말하는 걸 거다. 이유 없이 그런 삶을 살지는 않을 거 같다. 그렇기에 그 상황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돈 벌었다고 웃지마”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그 대사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을 거다. 윤정학은 분명 현실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한시현 같은 사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 우리 현실이 어땠을까?’라는 물음표도 던져본다”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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