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영화 통해 문제 제기하는 것, 그게 제 역할이죠”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1946년생, 올해로 7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열정적이다. 컷 소리와 함께 맨발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배우와 소통하는 제작자, 정지영 감독이 7년 만에 또 하나의 사회고발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영화 ‘블랙머니’는 지난 2003년 일어난, 희대의 금융 비리 사건인 ‘론스타 먹튀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약 16년이 지나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잊혔으나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건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영화로 풀어냈다. 조진웅과 이하늬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호연도 제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 정지영 감독의 연출이 영화에 큰 힘을 불어넣는다.

그간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를 통해 사회고발 영화의 거장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지만, 이전 정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1호’에 올라가며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지금까지도 수면 아래의 사건을 끌어올리며 관객들의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전할 메시지와 함께 찾아온 정지영 감독을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블랙머니’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 끊임없이 사회고발 영화를 만드는 그의 소신 등을 아낌없이 전한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영화 ‘남영동 1985’ 이후 7년 만에 새 작품으로 돌아왔어요. 감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부러진 화살’ 때는 13년 만에 영화를 만들었어요. 하하. 오랜만에 하는데도 불구하고 낯설지는 않았어요. 끝없이 준비하고 노력해서, 그런 것들을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장에 나와서 “레디, 액션”을 외친 게 정말 오랜만이었죠. 영화 일은 계속했는데, 현장을 7년 만에 경험을 한 거고요. 역시 현장이 가장 재미있어요. 시나리오 쓰는 것도 재미있지만요.

Q. 오랜만에 현장에 돌아왔는데, 달라진 것들이 있었나요?
많이 달라졌죠. 영화 산업 환경이 바뀌고, 주 52시간 근무를 하잖아요.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현장에 오시고요. 감독이 머리만 잘 쓰면 좋은 작품을 끌어낼 수 있는 네트워킹이 되어 있어요.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죠. 감독이 하는 준비는 이전과 같은데, 스태프들의 준비가 더 탄탄해진 거예요.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은 만큼 스태프들이 단단히 준비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차질이 생기니까요. 감독은 자신이 머릿속에 있는 걸 전달만 하잖아요. 그래서 감독은 시간이 덜 들어가는 거죠. 하하.

Q. ‘론스타 먹튀 사건’은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사건인데, 영화화를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요?
우리 세대에게는 정말 유명하고 언론에서 크게 떠드는 사건이었어요. 국회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감사원 감사도 하고, 수사도 있었죠. 하지만 경제 문제가 어려우니까, 국민들이 깊게 알지는 못해요. 그래서 그냥 지나가는 거죠. 그 사건을 잘 들여다보고 나니까, 우리가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되는 사건임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반드시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문제를 드러내야만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서 영화를 만든 거죠. 영화를 본 2-30대는 이 사건이 조금 새삼스러울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의 재미에 빠지다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알 수 있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어떤 곳에서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어요.

Q. 사회고발 영화지만, 대중성도 잡기 위한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거 같아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어요. 어려운 것들을 쉽게 풀어야 하는데, 쉽게 하다 보면 정말 어려운 점들을 이해하기 어렵잖아요. 그 균형을 잘 맞춰서 영화 속 사건은 쉬워 보이지만, 그 사건이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려주려고 하니까 머리가 아팠죠. 처음에는 전문용어를 자막으로 넣어서 설명하는 것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영화의 사실성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자막을 제외해서 사실성 있게 가면서, 영화의 흐름에서 최대한 그 용어의 뜻을 느끼게 하자고 목표를 잡았어요. 다행히 관객들이 이해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사회적 문제나 이슈를 다시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신문에서 보는 걸 다시 영화관에서 보면서 머리 아파하는 걸 싫어하니까요. 그래서 정말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만들지 않으면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요. 저는 많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저 지나가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 과정이 정말 힘들죠. 저는 정말 힘든 작업을 하는 거예요. 하하. 

Q. 주연배우 조진웅, 이하늬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두 사람 모두 잘 해줬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캐릭터를 잘 구현해서 영화 전체를 조화롭게 만들었어요. 부딪힐 때 부딪히고, 화해할 때 화해하고, 그러면서 케미스트리를 만들기도 하고요. 훌륭한 연기를 해준 거 같아요.

Q. 두 배우의 캐스팅 비화가 궁금해요.
조진웅 씨는 ‘저 친구와는 한 번 작업을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캐스팅했어요. 감독들은 캐스팅을 끝내고 나면 그 배우들이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보일지 그려봐요. 그런데 조진웅 씨가 처음 연기할 때, 제가 머릿속에서 그린 게 아닌 연기가 나와서 당황했어요. 조금 과장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테스트를 시켰죠. 어느 순간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양민혁 같은 연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는 내가 생각한 양민혁에 플러스알파를 해줬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그랬더니 며칠 후에 “감독님, 제가 양민혁입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은 양민혁으로 빙의가 됐다는 거였죠.

반면, 그동안 제가 본 이하늬 씨의 이미지는 화려하거나, 영화 ‘극한직업’처럼 과장된 코믹함이었어요. 하필 제가 본 드라마도 ‘열혈사제’였는데, 그 작품에서도 망가지는 검사 역할이었죠. 하하. 김나리는 냉철한 엘리트 변호사인데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알고 보니까 이하늬라는 배우에게 정말 단단한 자신의 세계가 있더라고요. 그걸 감추면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김나리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줬죠. 일부러 외적인 조건도 화려하지 않게 만들었어요. 이하늬의 모습에 화려함을 입힌 순간 지적인 이미지가 훼손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해 단색 의상을 입히고, 머리를 묶고, 안경을 씌우는 방법을 선택한 거죠.

Q. 두 배우가 감독님을 각각 ‘청년 정지영’, ‘장인 정지영’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들었어요.
‘청년 정지영’은 정말 마음에 들고, ‘장인 정지영’이나 ‘전설’은 마음에 안 들어요. 하하. 조금 거북한 거 같아요.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서요.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매번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영화화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사건 기준이 있나요?
그 사건이 묻혀버렸거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흘려보낸 사건이죠.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상당히 깊은 영향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요. ‘그 의미를 관객들과 다시 한번 따져보고 싶은 것들은 정지영의 영화 감이다’라고 생각해요. 저는 영화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요.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Q. ‘남영동 1985’ 이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어요.
그건 제가 선택한 운명이잖아요. 누가 시켜서 ‘남영동 1985’를 만든 것도 아니고요. 어쩔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그걸 만들어서 제 생존권을 박탈하려고 했던 세력들은 정말 미워요. 인간으로서 못 할 짓을 한 거예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못 하게 한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에요.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안 하던 것들을 해요. 모두가 똑같이 표현하는 걸 하고 싶지 않죠. 그런 사람들의 창작을 억압시키는 건 문화예술을 발전시키지 않겠다는 거예요. 정체와 후퇴를 말하는 거죠.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에요.

그래서 그 기간에 멜로드라마나 사극을 해보려고 했어요.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존권을 박탈당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남영동 1985’ 같은 영화가 아닌 멜로를 하려는데 안 되니까요. 저는 영화감독을 하지 말라는 소리죠.

Q. 7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영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계속해서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이하늬 씨가 저보고 청년이라고 하잖아요. 전 현장이 재미있어요. 현장에 있으면 엔도르핀이 돌아요. 

Q. 비슷한 장르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지난해 38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어요. 이번 영화의 흥행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국가 부도의 날’을 이미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영화를 준비할 때 봤어요. 그 작품이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이 많이 보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주위에서 이번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관객들이 얼마나 이해할지를 걱정했거든요. 그때 제가 300만에서 400만은 채우겠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얻은 자신감이었어요. 그랬는데 일반시사까지 끝나고 나니까 관객 반응이 정말 좋더라고요. 예상 관객 수를 적게 잡은 거 같아요. 하하. 지금 보니까 500만 관객은 들어올 거 같은데요.

Q. 이번 영화를 만들며 세운 목표가 있나요?
지금 2-30대 관객들이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영화가 상영된 후에 다시 한번 언론에 해당 사건이 리마인드 될 거예요. 그때 공부를 해서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고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구나’라는 걸 안다면 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Q.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요?
역시 배우들의 연기합이 상당한 재미를 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양민혁 검사를 쫓아가다 보면 몰랐던 경제를 알게 될 거예요. 어렵다고 생각한 것들을 금방 이해하고요. 지금도 언론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영화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현재의 이야기라는 걸 느끼겠죠? ‘블랙머니’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며 공부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재미있으면서 몰랐던 것들을 깨닫는 건 일석이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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