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윤희에게’ 김희애 ① “퀴어 소재 영화?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일 뿐이에요”
▲ ‘윤희에게’ 김희애 (사진=리틀빅픽처스)
▲ ‘윤희에게’ 김희애 (사진=리틀빅픽처스)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배우는 늘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스토리는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퀴어 소재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어요. 다른 영화와 똑같이 봤죠.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으로 봤을 뿐, 다른 종류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배우 김희애가 이르게 찾아온 겨울과 어울리는, 포근한 설원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로 스크린을 찾아왔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는 김희애가 데뷔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퀴어 멜로로 캐스팅부터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제니스뉴스와 김희애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윤희에게’ 인터뷰로 만났다. ‘윤희에게’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 분)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감성 멜로다. 

극중 김희애는 딸 새봄과 함께 편지 속 주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윤희로 분했다. 영화 속 윤희는 그가 가진 섬세하고 애틋한 감성을 고스란히 안은 채 과거의 첫사랑을, 잊고 있던 자신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극장에 앉아 윤희의 여행에 동행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첫사랑을, 현실에 부딪혀 잠시 미뤄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유독 볕이 좋은 날 만난 김희애는 영화 속 윤희처럼 차분하게, 혹은 시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기자에게 역으로 감상을 물어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생각도 가감 없이 말하는 김희애와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으로 가득했다.

▲ ‘윤희에게’ 김희애 (사진=리틀빅픽처스)
▲ ‘윤희에게’ 김희애 (사진=리틀빅픽처스)

“아무래도 전 영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서, 반응이 정말 궁금해요. 저는 소소하고 소박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선택했는데, 관객들은 조금 더 자극적이고 현란한 것들을 원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했어요. 제가 좋아서 선택한 부분은 관객분들도 똑같이 느끼길 바라거든요”

‘윤희에게’는 이전까지 김희애가 선보인 멜로와 달리, 여성과 여성의 로맨스를 다룬다. 최근 충무로에서 다수의 퀴어 영화가 제작되고 있지만, 배우로서는 여전히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희애는 소재의 특별함이 아닌, 오로지 시나리오 자체에 매료돼 이 영화를 선택했다.

“배우는 늘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스토리는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퀴어 소재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어요. 다른 영화와 똑같이 봤죠.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으로 봤을 뿐, 다른 종류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보다는 ‘이런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질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내용을 자극적인 부분 없이, 순수하게만 만들어진 거 같아서요. 그게 정말 좋았지만, 반면에 다른 분들은 이걸 어떻게 보실지 걱정도 되고요.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흥행이 결과라면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죠”

멜로 영화지만 ‘윤희에게’는 로맨스를 보여주는 과정이 조금 특별하다. 윤희와 쥰(나카무라 유코 분)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며 서로를 그릴 뿐, 영화 후반까지 이들이 만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멜로 영화가 상대 배우와 함께 감정을 쌓아간다면, ‘윤희에게’는 오롯이 김희애 홀로 쥰을 향한 감정과 서사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기에 김희애는 시나리오에 더욱 의존해 차근히 감정을 쌓아 올렸다. 또한 여러 로맨스 영화를 보며 그 감정에 공감하고 도움받으며 김희애만의 윤희를 완성했다.

“영화 속 쥰과 만나는 장면이 정말 짧잖아요. 계속 감추고 표현하지 않다가, 쥰과 만나는 장면에서 감정을 폭발해야 해서요. 제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나 음악을 통해서 담금질을 많이 했어요. 저는 늘 시나리오에 집중해서 연기하는 편이에요. 그 감정을 잡는 게 어렵고 부담도 정말 많이 됐어요. 촬영하면서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오로지 제 상상에 의존했다가 쥰과 대면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죠. 시나리오가 밑바탕이 돼서 잘 됐던 게 아닐까 싶어요

참고한 작품은 하나라고 얘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보고 따라갔어요. 영화 속 윤희와 쥰 같은 사랑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이든 제 감정에 도움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봤죠. 두 사람과 같은 사랑을 가진 영화를 보더라도 다르지 않더라고요. 똑같은 감동이 있었어요. 오히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사랑이라 더 절절하고 마음이 아플 수도 있겠더라고요. 저도 관객으로서 저희 영화를 볼 때 그런 감동이 있었고요.”

▲ ‘윤희에게’ 김희애 (사진=리틀빅픽처스)
▲ ‘윤희에게’ 김희애 (사진=리틀빅픽처스)

장르적 특성과 별개로 ‘윤희에게’는 김희애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촬영을 거치며 캐릭터에 이입하게 됐던 이전과 달리, 홀로 감정을 상상하고 쌓아간 후 카메라 앞에서 윤희로 변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촬영에 들어간 김희애는 흔들림 없이 윤희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에 대해 그는 “카메라 앞에서 빙의되나 보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장면이 많고, 계속해서 촬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이입하게 돼요. 이번 영화는 그런 점이 조금 힘들었죠. 계속 감정을 상상하고 그리다가 표현해야 했거든요.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전작 ‘허스토리’는 계속해서 일본어도 외우고, 자면서도 부산 사투리를 들으면서 캐릭터를 만들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문정숙이 돼 있어서 그런 보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맨바닥에서 허둥대면서 윤희를 만들어 갔어요. 그래도 촬영에 들어가면 감정이 폭발했죠. 감독님께서 여백이 있는 시나리오를 주셔서 그걸 통해 제 감정을 만들어 갔던 거 같아요.

저는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다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터트리는 편이에요. ‘허스토리’ 때도 사투리를 정말 못 해서, 민규동 감독님도 걱정하시고 김선영 씨가 “언니 이래서 되겠나”라고 할 정도로 절 못 미더워했어요. 첫 촬영에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내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게 감독님 마음에 들어서 한 테이크로 끝났어요. 제 장점인데, 카메라 앞에서는 빙의되나 봐요. 하하. 이번에도 촬영 첫 장면이 우는 신이었는데, 그게 또 카메라 앞에서 되더라고요”

‘윤희에게’는 김희애가 신인 임대형 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또 다른 화제를 낳았다. 올해로 데뷔 36년을 맞이한 그가 검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의 작품을 선택하는, 소위 말하는 모험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대형 감독은 윤희의 감정선뿐만 아니라 새봄(김소혜 분)과의 모녀 관계까지 남성 감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심하게 표현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김희애는 ”감독님이 정말 천재 같다“며 이야기하는 내내 감탄을 쏟아냈다.

“임대형 감독님은 정말 천재 같으세요. 동시에 자세가 정말 좋으신 거 같아요. 이대로 쭉 간다면 실력도 있고, 마음도 좋으시니 훌륭한 대가가 되지 않을까요? 감독님이 잘되길 진심으로 빌어요. 감독님은 글을 정말 잘 쓰세요. 일본 배우분들도 시나리오가 좋아서 출연을 결정하셨대요. 그걸 듣고 글이 좋으면 국적을 막론하고 통한다는 걸 느꼈죠. 현장에서도 젊은 감독님이지만, 다들 예의를 갖추고 감독님을 존경했어요. 또, 젊은 남자 감독님이 모녀 사이의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그리셨는지 모르겠어요. 성별은 다르지만 깊은 통찰을 하시는 거 같아요”

또한 김희애는 모녀로 호흡을 맞춘 김소혜를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Mnet ‘프로듀스101’으로 얼굴을 알리고 그룹 아이오아이(I.O.I)로 활동했던 김소혜는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윤희에게’로 스크린까지 진출한 김소혜를 향한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이 공존했으나, 그는 풋풋하고 정제되지 않은 매력으로 새봄을 소화했다. 김희애와 선보인 모녀 관계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소혜는 연기력을 검증할 새도 없이 정말 잘했어요. 그 역할은 제가 못 하죠. 할리우드 어떤 배우를 데려와도 못 할 거예요. 소혜를 같은 동업자로 봤지, 후배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풋풋함 같은, 초보의 싱싱함? 하하. 그런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연기를 오래 하다 보면, 연기력이 검증되긴 했어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거든요. 기존에 했던 연기를 피해가기에 한계가 있잖아요. 하지만 소혜는 보여줄 게 많으니까요. 성향 자체도 굉장히 보이쉬하고 씩씩하더라고요. 새봄 역할에 딱 맞았어요”

‘윤희에게’는 영화의 시작과 끝 모두 누군가를 향한 편지로 이뤄진다. 눈 덮인 마을로 떠나는 여정은 쥰이 보낸 편지로 시작됐고, 여행의 끝에서 자신을 찾은 윤희의 새로운 시작은 그가 쥰에게 보낸 편지로 표현된다. 나카무라 유코와 김희애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처음과 마지막을 잡아주며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김희애 역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윤희의 편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윤희의 마지막 편지는 정말 좋았어요. 시원하다는 기분도 들었고요. 윤희가 계속 감추고, 숨기다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을 시원하게 고백한 것 같았죠. 동시에 은밀한 느낌도 들어서 만족스러웠어요”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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