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최근 연예계에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기, 음악, 무대 등 다양한 도전을 하며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많다. 가수로 데뷔해 연기로 뛰어들거나, 연기를 하다가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등 활동 영역의 경계선이 무뎌진 모습이다.
그 사이에서 정선아는 뮤지컬이라는 길만 17년을 걸어왔다. 19세였던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후 다양한 작품을 거쳐 여성 뮤지컬 배우 중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이처럼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지금의 정선아를 만든 캐릭터는 단연 ‘아이다’의 암네리스라 할 수 있다.
‘아이다’는 정선아에게 많은 것들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집트의 철없는 공주 암네리스를 연기하며 데뷔 10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이전까지의 이미지를 탈피해 사랑스럽고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처럼 특별한 작품이기에, 정선아는 중국 유학을 떠난 지 약 9개월 만에 전 세계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아이다’ 공연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7년 만에 마지막으로 암네리스로 무대에 오르는 그는 매 순간 혼신의 힘을 쏟으며 무대에 임하고 있다.
제니스뉴스와 정선아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뮤지컬 ‘아이다’ 인터뷰로 만났다. ‘아이다’와 정선아가 함께한 10여 년의 시간, 지금까지의 뮤지컬 외길을 돌아보며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소회를 모두 담은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아이비 씨와 더블 캐스트로 암네리스를 연기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님이 “아이비 네가 데려왔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와 아이비 언니는 뮤지컬을 하기 전부터 친했거든요. 언니가 제 ‘아이다’ 첫 공연도 보러 왔어요. 그때 언니가 “넌 암네리스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줬는데, 이제 같이 ‘위키드’를 하고 나서 ‘아이다’를 함께 하고 있네요. 하하. ‘위키드’ 때 아이비 언니가 “꿈꾸던 무대를 너와 함께 해서 좋다”고 말해주셨는데, 저도 참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언니와 저는 정말 다른 사람이거든요. 같은 캐릭터를 하면서 또 다른 매력의 암네리스를 보여주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언니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Q. 아이다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윤공주 씨는 인터뷰를 통해 정선아 씨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어요.
지금 함께 ‘아이다’를 하는 배우 중에 언니와 가장 오래 알았는데, 같은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가 19세에 데뷔했는데 언니가 그때 제 공연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오며 가며 정말 많이 마주쳤던 배우이자 언니였어요. 보통 배우들끼리 작품을 하면서 더 많이 친해지고 서로를 알게 되잖아요. 저는 언니가 정말 아이 같고 사랑스러운 사람인 줄 여태 몰랐거든요. 오히려 공주 언니가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새는 서로 이렇게 재미있고 사람을 잘 챙기는 줄 몰랐다면서 이야기하기도 해요. 왜 이제야 만났느냐는 말도 했죠. 하하.
공주 언니는 무대 위에서 정말 힘이 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에너지가 정말 잘 맞는 거 같아요. 이번에 함께 하면서 느끼는 게, 저희 관계가 암네리스와 아이다 같아요. 두 캐릭터가 무대에서 정말 팽팽한 에너지 싸움을 하잖아요. 특히 드레스룸에서 공주이기 때문에 아는 공감대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때 배우 정선아와 윤공주가 하는 대화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잦아요. 저희끼리 배우이기 때문에 힘든 이야기도 참 많이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거리낌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요. 언니와 저는 정말 늦게 만났지만, 서로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무대에서 아이다와 암네리스가 만나지만, 그 안에 저희의 모습이 배어나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같이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2010년에 처음 ‘아이다’를 할 때 언니가 암네리스로 오디션을 보러 왔던 기억이 나요. 언니가 정말 잘 떨어서 잘 못 봤다고 이야기했던 기억도 나고요. 그랬는데 지금은 암네리스와 아이다로 마지막을 함께 하고 있네요. 하하.
Q. 새롭게 아이다로 합류한 전나영 씨와의 호흡도 궁금해요.
나영 배우는 보석 같아요. 저와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데, 정말 귀엽고 아기 같아서 ‘애기야’라고 불렀거든요. 그랬는데 나영 배우 나이가 서른인 거예요. 하하.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아이다인데, 무대 아래에서는 정말 애교가 많아요. 그래서 나영 씨의 말을 안 들어줄 수가 없어요. 저는 나영 씨를 보면서 정말 보석 같은 존재가 탄생했다고 느껴요. 아이다라는 역할이 연차가 높은 배우들도 쉽지만은 않거든요. 나영 씨는 한국에 와서 세 번째 공연하는 건데 부담이 클 거 같아요. 그만큼 연습벌레예요. 두 아이다가 방만 있으면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열심히 노력해서 시끄러울 지경이에요. 하하. 저렇게 노력하니까 무대 위에서 떨지 않는 거 같아요. 아이다는 대사도 많고 연기도 많은데 노래도 쉽지 않잖아요. ‘저렇게 연습하니까 무대에서 당당하고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영 씨가 아이다를 맡은 건 행운이라 생각하고, 정말 딱 맞는 옷을 입은 거 같아요. 외국에서 자란 친구라 한국과는 다른 정서가 있는데, 그게 아이다와 정말 잘 맞아요. 나영 씨를 보고 있으면 진짜 아이다 같아요.
Q. 지금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지만, 팬들이 유독 정선아 씨의 암네리스를 좋아해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정말 텐션이 높고 유쾌한 사람이에요. 행복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죠. 그래서 저는 무대 밖에서도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슬프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도 있어요. ‘안나 카레니나’도 정말 즐겁고 가슴 아프게 연기했거든요. 하지만 관객들이 정선아나 암네리스에 바라는 이미지를 제가 잘 충족시켜서, 이 역할을 다른 캐릭터보다 더 많이 사랑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이다나 라다메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될 수 있지만, 제가 1막에서 나타날 때 무거운 마음들을 즐겁게 하고 에너지를 주니까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요? 이런 유쾌한 캐릭터를 하실 때 관객분들이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제가 유쾌한 사람이라 잘 어울리나 봐요.
Q. 유쾌한 성격의 비결이 있다면요?
우선 저는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일어난 일은 일어나고, 지나간 일은 다 잊는 편이죠.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하하. 전 앞을 바라보면서 가는 사람인 거 같아요. 저 자신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무대 위에서 좋은 에너지를 보일 수 있는 거 같아요. 기쁘고 슬픈 역을 떠나서, 그런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잘 전해드리려면 제가 우선 행복한 사람이어야 하고, 긍정적이고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죠. 그래서 무대 위에서는 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게,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서 역할에 임하고 있어요.
Q. 최근 지방에서 하는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어요. 전에 비해 뮤지컬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거 같아요.
배우가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무대에서 난다 긴다 해도, 관객이나 불러주시는 분들이 없으면 알아주지 않거든요. 최근에 뮤지컬 시장이 정말 커졌는데 거기에 힘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주로 TV를 보시고 뮤지컬을 안 보신 분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한 번쯤 뮤지컬을 보셨다가 다시 무대를 보러 오기도 하시죠. 그렇게 시장이 커지면서 저나 다른 배우들도 함께 성장한 거 같아요.
저는 계속 뮤지컬만 했잖아요. 홍보차 방송에 나간 거 빼고는 무대에만 있었는데, 그런데도 기업 단위의 단체 관람도 많아지고, 많은 분이 뮤지컬 배우를 찾아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앞으로도 뮤지컬 시장이 잘 돼야 하는데. 하하. 뚝심 있게 제가 한 길을 걸어온 것에 후회하지 않아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방송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종합예술 뮤지컬을 좋아해 주시는 게 배우로서 정말 뿌듯해요. 앞으로 시장이 더 커지고, 저 또한 뮤지컬에 힘이 될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Q. 어느새 데뷔 17년 차를 맞이했어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시간이 그만큼 지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전 아직도 신인 같고, 새 대본을 받으면 늘 어려워요. 배우로서 고민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랬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이전까지 저는 주연을 하더라도 항상 막내였거든요. 이제는 까마득한 후배들이 생긴 것도 기분이 이상하고요. ‘많이 컸다, 정선아’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이 장르에서 오랜 시간 있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앞으로도 뮤지컬을 이끄는 한 사람으로서 좋은 후배들이 함께 무대에서 행복하게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마음 변하지 않고요. 뮤지컬은 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작품이 사랑받고 잘 되려면 배우들의 합이 정말 중요하고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같이 가야 하는데, 이제는 그 부분을 크게 깨닫고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동료들을 챙길 수 있는 심적인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Q. 앞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캐릭터로 각인되고 싶나요?
이전에는 어떤 캐릭터를 하든 잘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은 있지만, 뭘 하든지 ‘정선아 노래 잘한다’, ‘저 역할 잘한다’라는 말이 듣고 싶더라고요.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니까요. 이제는 잘하는 건 배우의 당연한 임무니까, 제가 그 역할을 했을 때 관객분들이 저와 그 여정을 함께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선아가 암네리스 역할 잘한다’라는 말보다는 제가 연기나 노래를 잘해서 공감대를 얻어서, 관객들이 캐릭터에 같이 빠져들면서 ‘내가 암네리스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가고 싶어요. 그게 지금 제 목표라,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하하. 지금은 암네리스의 기쁨과 아픔이 정말 공감되고 함께 슬프며 기뻐하는 마음을 느끼시면 좋겠어요. 같은 작품을 세 번 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을 만난 건 또 다른 의미인 거 같아요.
Q.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정선아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는 선물이에요. 처음에는 얼떨결에 고맙다고 받았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하면서 그 선물의 무게가 더 커진 거 같아요. ‘제가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도 되나’ 싶어요. 선물을 받으면 주는 즐거움도 있잖아요. 제가 받은 이 선물을 관객분들에게 더 큰 것들을 드리고 싶어요. 그게 제 성격이기도 하고요. 저는 받은 것보다 더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아이다’로 정말 받은 게 많아서 그 사랑을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다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관객분들께도 선물 같은 작품이 되고, 힐링하는 작품이 되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