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백두산’ 이병헌, 계속 보고 싶은 배우로 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 ‘백두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 ‘백두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지 당연히 생각해본 적 있죠. 많은 영화 팬들이 제가 어떤 작품을 할 때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일 거 같아요. 계속 그런 것을 유지하는 배우로 살아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매 작품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온 배우 이병헌이 또 하나의 강렬한 캐릭터로 돌아왔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이후 2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바쁘게 보낸 2018년을 뒤로 하고 짧은 휴식을 취한 이병헌은 ‘백두산’을 시작으로 다시 달릴 준비를 마쳤다. 

배우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대작을 선보이게 된 그는 화려한 액션부터 북한 사투리까지,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섬세하게 변하는 감정 연기까지 더해 129분의 러닝타임을 이끈다.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CG만큼 시시각각 드러나는 리준평(이병헌 분)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건 영화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새로운 모습으로 무장해 관객들을 찾아온 이병헌을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또 다른 경험을 했던 ‘백두산’ 촬영 비화부터 끊임없이 사랑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까지 털어놓은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 ‘백두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 ‘백두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Q.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이후 선보이는 차기작이에요. 설렘과 부담이 공존할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었어요. 막연하게 저의 이전 영화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생각했지, ‘미스터 션샤인’을 떠올리진 않았어요. 제가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구분 지어서 생각하나 봐요. 중간에 드라마를 해서인지 영화 개봉이 오랜만인 느낌이에요. 그래서 기자간담회로 홍보를 시작했을 때 살짝 어색한 느낌도 있었어요.

Q. ‘백두산’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저희 영화는 볼거리가 풍성한 재난영화예요. 버디 무비 같은 매력이 있기도 하고요. 그게 다른 보통의 재난영화와는 차별화된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하정우 씨와 이 영화에서 케미스트리가 잘 맞으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죠.

Q. CG 작업으로 배경 대부분이 꾸며진 작품인데, 연기하기에 까다롭지 않았나요?
드라마가 중심인 영화는 제가 어떻게 연기했고, 작품에 어떻게 나올지 대강 예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배경이 다 바뀌어버려서요. 거기에 배경이 정말 중요한 영화라 시사회에서 작품을 보기 전까지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만큼 CG가 정말 중요한 영화였거든요. 저 역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관객처럼 영화를 봤어요. 물론 CG 편집이 전혀 안 된 현장 편집본 정도는 본 적 있죠. 하지만 그걸 봤을 때는 너무나 많은 상상력이 필요해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거예요. 또 연기할 때 제 주변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도 감독님과 수위를 잘 맞춰야 해요. 제 뒤에서 어떤 규모로 무엇이 오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걸 최대한 꺼내야 적당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많은 경험을 했죠.

저는 대부분 눈앞에 없는 것들을 배경으로 연기해야 했어요. 대신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했죠. 주로 춘천에 있는 야외 세트에서 촬영했고, 실내 세트도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어요. 실내 세트는 먼지가 엄청나게 나거든요. 그런데 바깥에서도 재를 뿌려서요. 하하. 종이로 만든 재도 이렇게 숨쉬기가 어려운데, 실제 그런 상황이었다면 오래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

Q. 그렇다면 완성된 영화를 보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나요?
저희 영화는 연말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재난 오락물로서 의도한 스케일과 볼거리,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시사회 직전까지 이 영화가 어떨지 감이 거의 없었어요. 저와 상대방이 어떻게 연기했는지만 알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CG와 편집, 음악 등이 후반 작업에서 어떤 식으로 들어갔는지 모르니까요. 시사회 끝나고 ‘어마어마한 규모였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감독님께서 겸손하게 하시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촉박한 시간 안에 정말 많은 CG를 해야 해서 시사회 전전날까지 일해야 했던 상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보름만 더 주어졌으면 좋았을 거란 말도 하시고요. 초반 10여 분 정도 등장하는 강남역 지진 장면은 정말 많이 놀랐어요. 영화가 정말 힘있게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부분의 CG에 정말 많은 신경을 기울인 거 같았죠.

Q. 리준평의 강렬한 첫 등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연기하면서도 많은 신경을 썼을 거 같아요.
감독님은 리준평의 등장이 임팩트 있으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모습까지 보여주길 바랐어요. 아마 리준평이 등장하는 순간 EOD 대원들도 놀라고, 관객들도 놀라셨을 거예요. 거기에 첫 마디는 목포 사투리를 썼다가 러시아어를 하기도 하죠. ‘저 사람은 정체가 뭐지?’, ‘어떤 사람일까?’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등장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했죠. 천장에 매달려서 운동하다가 뚝 떨어져서 나오는 방법도 생각했는데, 결론은 영화처럼 뚜벅뚜벅 걸어 나오기로 했어요.

Q. 리준평의 심리 묘사도 중요하지만, 액션부터 북한 사투리, 중국어 등 소화해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북한 사투리는 전반적으로 써야 하는 말이라 가장 부담을 느끼고 시작했어요.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까 북한 사투리, 목포 사투리, 러시아어, 중국어까지 해야 했죠. 그래도 배우고 있으니까 중국어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북한 사투리나 목포 사투리는 어쨌든 우리말이라, 억양이나 리듬이 있고, 어느 정도 법칙이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중국어는 정말 모르고 생소한 말이었죠.

액션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주먹이나 발을 쓰는 액션도 많이 긴장한 채로 촬영해요. 항상 사고가 뒤따를 수 있는 장면이니까요. 반면 총기 액션은 소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정말 커요. 영화관에서 듣는 소리와 달라요. 총소리와 상대방이 쏜 총알이 박힐 때 파편이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이죠. 멋있게 피해야 하는데 옆에서 터지는 걸 아니까 계속 의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려고 정말 많은 신경을 기울였죠. 총기 액션은 그런 스트레스가 좀 있어요.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파편에 다치기도 하고요.

Q. 그렇다면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도 부상을 입었나요?
이번에는 손이 조금 찢어졌어요. EOD 대원들이 핵탄두를 뽑고 있을 때 지진이 나서 준평이 도망가잖아요. 그때 문이 닫히려는 걸 막으려고 원통을 굴리는데, 바깥으로 나사가 난 걸 모르고 세게 굴리다가 손등이 좀 찢어진 거예요. 아무는 동안 계속 밴드를 하고 있어야 해서 한 5일에서 일주일 정도 촬영하는 동안 밴드를 착용하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손에 밴드를 한 모습이 있어요. 하하. 그래도 바로 꿰매서 괜찮아요.

▲ ‘백두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 ‘백두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Q. 극중 배우들의 재치있는 애드리브가 화제가 되고 있어요. 
‘백두산’에서 보여준 말 줄임 개그는 편집될 거로 생각하면서 했던 거였어요. 다행히 재미있었나 봐요. 실제로 정우 씨와 애드리브로 했던 장면 중에 솎아낸 것들이 많아요. 나중에 전혜진 씨에게 들었는데, ‘동석이 오빠가 정말 무궁무진하게 애드리브를 했는데 다 잘렸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런데도 동석 씨가 재미있었어요. 저는 시나리오를 다 읽었잖아요. 굉장히 심각하고 평이한 신이었는데 거기서 재미를 찾아내서 만들었더라고요. 정말 만만치 않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죠.

Q. 딸 순옥 역의 김시아 씨와 연기 호흡도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는 말을 잃은 상태지만, 그 뒤로 제 대사는 조금 더 있었어요. 영화 속 편집된 장면보다 더 길었고요. 지금은 정말 슬림해진 상태로 꾹 누르는 신이 됐는데, 원래는 정말 슬픈 장면이에요. 순옥이 아버지를 알아보는지, 못 알아보는지 모호한데 어떤 순간에 그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과정이 있었죠. 그게 보였다면 정말 슬펐을 거예요. 하지만 그 신만 너무 튀고 커져 버리면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저는 그 신을 촬영하고 시아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어떻게 저렇게까지 연기하지?’ 싶더라고요. 우는 건 다른 아역 배우들도 할 수 있지만 섬세하고 디테일한 감독의 주문을 다 알아듣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크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시아 씨 어머니가 현장에 같이 오시는데 ‘성인 연기자를 통틀어서 이렇게 연기 잘하는 딸을 두셔서 좋으시겠다’라고 했어요. 스태프들도 다 박수쳤고요. 지금 장면처럼 슬림해진 건 나름대로 영리한 선택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가 느껴져요. 영화에서 편집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

Q. 이제는 세 살 아들의 아빠인데, 아빠가 된 것도 이런 연기에 영향을 미치나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자식이 없는 배우가 했을 때 온전히 상상력에 맡겨서 그 감정을 연기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조건이 맞는 상황에서 상상을 가미한 연기는 조금 다를 수 있죠. 

Q. ‘백두산’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대형 영화예요. 이처럼 대작의 주연을 맡으면 부담이 더욱 커지는 편인가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을 선택할 때 그 이야기 안에서 제가 어떻게 감정을 잘 표현하고 놀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제작사나 배급사가 어디인지 전방위적으로 신경 쓰기 어려워요. 어느 배급사에서 한다고 제 연기가 달라지는 건 아니고, 규모가 크고 작다고 제 연기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어요.

Q. 어느새 내년이면 데뷔 20년 차예요.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왔는데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 적 있나요?
당연히 해본 적 있죠. 많은 영화 팬들이 제가 어떤 작품을 할 때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일 거 같아요. 계속 그런 것을 유지하는 배우로 살아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감사함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고요. 

Q. 그래서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SNS를 시작한 건가요?
SNS는 예전에 ‘지 아이 조 2’ 찍을 때 미국 매니저가 계속 권유를 했어요. 그때는 ‘SNS를 왜 하느냐’고 했죠. 제가 SNS의 노예가 될까 봐요. 하하. 몇 년 만에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하고 있는데, 지금도 솔직히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재미있게 하는 거죠. 무의미하게 하지 않고, 의미 있을 법한 걸 올리는 거예요. 제가 어떤 작품의 예전 사진을 올리면 그 작품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흐뭇해할 수도 있잖아요. 또 제가 뭐 하는지 궁금해할 팬들을 위해 어디 다녀왔다, 어디에 있다고 알리기도 하고요. 그랬는데도 어느 순간 꼭 재미있어야 하고, 의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들어요. 한 달 이상 안 올린 거 같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제가 정말 SNS에 묶여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게는 하지 말자고 생각해서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죠.

Q. 이제는 더욱 바쁜 2020년을 앞두고 있어요. 올해를 돌아보면서 내년의 바람을 듣고 싶어요.
올해 연말은 ‘백두산’을 보면서 끝내고 연초에는 ‘남산의 부장들’을 봐야죠. 하하. 그나마 올해는 3분의 2는 일하고 3분의 1은 쉴 수 있었던, 그래서 여유 있었던 한 해인 거 같아요. 남은 휴식이 있다면 비워낼 건 비우고 새로운 에너지를 담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해야 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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