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무엇보다 나잇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40대에 들어서고 있으니까요. 현장에서 배우로서의 태도가 중요한 거죠. 후배 배우나 스태프들보다 제 나이가 많아지잖아요. 선배님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있어요”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배우’가 된 하정우가 또 하나의 대작으로 연말 스크린을 찾아온다. 다시 한번 덱스터 스튜디오와 의기투합한 하정우는 영화 ‘백두산’에서 백두산 폭발이라는 재난을 막기 위해 파견된 EOD 대위 조인창으로 분해 현실적인 연기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정우가 선보이는 캐릭터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자 특색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백두산’의 조인창은 다소 허술하고 짠한 모습으로 관객들이 실제 재난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여기에 하정우 특유의 웃음 코드가 더해지며 다소 피로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완한다. 하정우의 장기가 고스란히 조인창에게 입혀진 것이다.
현실적이라 더욱 이입하게 되는 캐릭터로 변신한 하정우를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백두산’에서 선보이는 인간적인 캐릭터의 매력,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소신 등을 허심탄회하게 내보인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인간미 넘치는 조인창이라는 캐릭터로 스크린에 돌아왔어요. 캐릭터 구상은 어떻게 했나요?
인창의 인간미는 솔직함 같아요. 허둥대고 졸아있고, 우왕좌왕하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팀원들이 ‘인창의 빈자리를 채워줘야겠다’ 생각하게끔 하는 거죠. 그런 부분이 있어서 조화롭지 않았나 생각해요. 인창의 그런 모습을 극대화하려고 생각했고요.
어떤 작품이나 작업이든 주연 배우가 모든 상황에서 유연하게 리액션하며 만드는 거잖아요. 한 인물이 수많은 인물을 만나고 리액션을 하며 성장하고 변화를 겪게 되니까요. 제 원래 작업 방식이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백두산’에서 특별하게 뭔가를 하지는 않았어요. 반대로 병헌 형도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Q. 연기할 때는 인창 같은 캐릭터보다 완벽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더 수월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저는 영화의 재미를 높일 수 있는지가 우선순위예요. 인창은 리준평(이병헌 분)과 상반되는 캐릭터로 영화의 한 축을 맡았죠. 준평이 멋있고 완벽한, 영화적인 느낌의 캐릭터라면 인창은 그와 반대되는 부분들을 담당하는 거예요. 그게 조화를 잘 이루면 영화가 더 재미있어지고, 더 풍성하게 느껴지는 거고요. 그래서 병헌 형의 캐스팅을 더 바랐어요. 제가 인창을 한다면 준평은 그런 사람이 와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Q. 영화의 큰 장르는 재난물이지만, 인창의 성장기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원래 북한으로 넘어갈 때 전투를 담당하고 이 미션을 끝까지 수행할 팀이 있었는데,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인창과 EOD 대원들이 그 임무까지 맡게 돼요. 굉장히 당황스럽죠. 하지만 무조건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준평을 만나 어떻게든 가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인창과 대원들이 상황에 적응해요. 저는 인창의 성장 과정을 총 네 포인트로 잡았어요. 첫 번째 성장 포인트는 ICBM의 핵을 가지고 와서 이경영 형과 전화 통화 후 준평에게 갈 길 가라고 하는 장면이에요. 두 번째는 갑자기 교전 상황이 돼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트럭 기름통에 불을 붙여서 적극적으로 액션을 하는 거죠. 세 번째는 보천 갈림길에서 서로 총을 쏘다가 갈 길 가자고 하는 지점이고, 이후 혼자 가려다가 다시 준평을 찾아가서 미군과 중국 브로커 사이에서 소리치는 게 네 번째 지점이에요. 이 네 지점을 기준으로 인물이 성장하는 걸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Q. ‘신과 함께’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도 CG 작업이 중심인 영화와 함께했어요. 지난 경험이 ‘백두산’ 촬영에 도움됐나요?
아무래도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더 익숙했어요. 요새는 촬영장에 가면 어떤 장르나 시대를 막론하고 블루스크린을 설치하고 연기해요. 환경 자체가 점점 변화해가는 거죠. 그렇게 특별한 것 없이 변해가고 스태프나 배우들도 적응해야 하는 환경이 되는 거예요.
Q. 완성된 영화를 본 감상이 궁금해요.
일단 CG 걱정을 많이 했죠. ‘신과 함께’ 때도 CG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미 한 번 본 적 있어서 괜찮을 거로 생각했어요. 저도 언론시사회 때 CG가 들어간 버전을 처음 봤어요. 다행스럽게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압도적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런 표현하는 게 쑥스럽지만 ‘이제는 기술력이 정말 많이 올라왔구나’, ‘훌륭하다’ 싶더라고요.
Q. ‘백두산’은 현실성이 극대화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돼요. 연기할 때 어렵지 않았나요?
그 설정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는데, 저는 시나리오를 미리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으니까 불편함이 있었죠. 거기에 헬멧까지 써야 하니까,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예요. 군복에 방탄조끼, 헬멧에 총까지 달고 연기하는 게 굉장히 불편하거든요. 움직임에도 한계가 있고요. 여기에 장면 대부분이 장갑차 안에서 이뤄지는, 압박받고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드라마가 전개되는 거라 그 상황에 맞게 연기해야 했죠. 그런 것들이 불편했다고 할까요. 감독님들과 병헌 형과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드라마적이고 코미디적인 요소는 무조건 표현해야 한다고 했어요. 현장에서 헬멧을 벗을지 말지를 두고도 정말 많은 이야길 나눴죠. 다른 영화와 다르게 특수한 상황과 특수한 직업이라서요.
Q. 이병헌 씨와 연기 합이 인상적이었는데, 애드리브는 사전에 맞춰본 건가요?
그날 촬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감독님께 먼저 알려요. 감독님이 그걸 오케이 하시면 저와 병헌 형, 스태프들에게 수정됐다고 공지를 해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하는 건 사실 불가능해요. 그날 아침 촬영 전에, 리허설 전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합의한 후에 촬영에 들어가요. 장갑차 신은 병헌 형이 야외에서 소변 보는 장면을 따로 찍고, 제가 내부에서 수갑 찬 장면을 또 따로 찍었거든요. 저는 그 영상을 보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한 거죠. 병헌 형이 시나리오와 다르게 대사를 많이 수정했더라고요. 그에 맞게 전 리액션을 한 거예요.
Q. 그렇다면 아내를 부르는 애칭 ‘큐티쁘띠’도 하정우 씨의 애드리브인가요?
‘큐띠쁘띠’는 이해준 감독님 작품이에요. 연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하. 제가 정말 낯가림도 심하고, 보이는 것과 다르게 어색한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자꾸 배치해두고 요구하셔서요. 더 심한 것도 많이 있었는데 그나마 절충해서 ‘큐띠쁘띠’로 끝난 거예요. 더 과도한 표현들이 많이 있었어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다행이에요. 관객들의 오글거린다는 말도 인정했어요. 제가 봐도 오글거리니까요. 마지막 장면은 장갑차 촬영 끝나고 따로 쿠키 영상으로 촬영한 거예요. 감독님들이 원해서 따라준 거죠. 하하.

Q. 이번 영화로 이병헌 씨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어요. 이병헌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일단 병헌 형과 저는 각자만의 유머 세계가 있어요. 사석에서도 많이 뵙고 이야기도 많이 해서, 이 형이 어떤 형인지는 충분히 알았고 형의 연기도 많이 봐서요.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알고 있었죠. 처음 함께한 작품이지만 새롭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전에 한 번 해봤다는 기분도 들었어요.
Q. 이병헌 씨와의 케미스트리가 잘 드러난 장면을 고른다면요?
저는 장갑차 신이 재밌었어요. 저와 형이 따로 촬영했는데, 형이 장갑차 밖에서 볼일 보는 모습은 야외에서 찍고, 제가 장갑차 안에서 수갑 차고 대사하는 건 다른 세트에서 찍었거든요. 먼저 영상을 봤을 때 형이 시나리오보다 MSG를 많이 넣었다 싶어서 저도 똑같이 MSG를 넣었어요. 나머지는 촬영 순서에 맞춰서 장갑차 신을 촬영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제가 재미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감독님들도 만족하셔서요. 결과물을 보며 형과 현장에서 많이 웃기도 하고요.
Q. 영화는 인창과 준평, 두 인물의 버디 무비 성향이 강해요. 이 부분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두 인물이 스토리를 확장할 가능성이 있었던 거 같아요. 재난영화라고 하면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관객들이 수많은 영화를 보셨으니 다 예상하시죠.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조금 더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예상과 어긋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잠재력을 느껴서 그런 식으로 디자인해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보다 코미디를 많이 살렸어요. 처음에는 인물들이 더 진지했어요. 준평이나 인창 모두 그런 모습을 많이 뺐죠.
Q. 부부 연기를 펼친 배수지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함께 연기하면서 부담은 없었어요. 단지 이래도 괜찮을까 생각했죠. 제가 너무 오글거려서 잘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어요. 수지는 정말 털털하고 성격이 세요. 인간적인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일해서 그런지, 털털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요.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대범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배 회장’이라고 별명을 지었는데, 수지에게 회장님 마인드가 있어요. 여유 있고요. 꾸밈도 없고 담백하게 연기하는데, 그 연기에 힘이 있더라고요. 정말 좋았어요. 더 좋은 배우로 더욱 성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백두산’ 같은 대형 작품도 좋아하지만, 팬들은 중저예산 영화에서 하정우 씨가 보여주는 모습도 좋아해요. 중저예산 영화에 다시 참여할 생각은 없나요?
당연히 하고 싶죠. 하고 싶은데 그런 영화를 만나기가 정말 어려워요. 요즘에는 독립영화계에서 조금 잘 찍는다고 하면 바로 큰 영화로 데뷔시키잖아요. 윤종빈 감독이 성장하듯이 단계가 있었는데, 요새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바로 큰 영화 제작 시스템에 넣어요. 자신의 색을 펼칠 기회가 감독들에게 없는 거예요. 아니면 계속 독립영화만 찍는 거고요. 한국 영화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연배우에게 ‘왜 이런 영화를 안 찍느냐’라고 하시지만, 그런 시나리오를 만나고 싶은데 정말로 없어요.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싱글라이더’도 그 정도 규모로 촬영한 거고, 곧 개봉하는 ‘클로젯’도 중간 규모의 영화예요. 또 하나 기획 중인 작품도 그만큼의 규모로 예상하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도전하고 이어가야겠단 생각을 하는 거죠.
Q. 지금 준비 중인 영화도 소개해줄 수 있나요?
지금은 ‘보스턴’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어요. 서윤복 선수와 남승용 선수가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는 이야기예요. 굉장히 큰 드라마와 이슈가 있던 일인데 6.25 전쟁이 바로 터지면서 묻혔거든요. ‘보스턴’은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있어요. 한국 촬영은 거의 끝났고, 호주로 가서 보스턴 대회 장면을 찍을 예정이에요. 다음은 ‘터널’ 김성훈 감독과 모로코에서 4개월 정도 촬영할 예정이에요. 또 윤종빈 감독과 도미니카 공화국에 가서 ‘술이 낙’이라는 작품을 4개월 정도 찍어야 하고요. 내년에는 거의 해외에 있을 예정이에요. 낯선 곳에 가야 하니까 감이 안 와요. 모로코는 돼지고기를 못 먹거든요. ‘배가본드’ 때 수지 씨가 모로코 로케이션을 했다고 해서, 자세한 건 수지 씨에게 물어보려고요. 저희는 4개월을 장기 체류해야 하니까요.
Q. 이전 인터뷰에서 ‘시련이 올 때 기뻐하고 이겨내는 걸 좋아한다’고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여전히 시련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죠.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어요. 전부 지나고, 겪고 나니까 할 수 있는 말 같아요.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말을 뱉어야 조금 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한 번씩 그런 시기를 겪고 나면 나중에 엄청난 보물을 찾게 되더라고요. 매번 다 밝은 날일 수는 없잖아요. 그때는 속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가고 보면 또 하나의 작품으로 남는 거예요.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신과 함께’나 ‘1987’, ‘PMC: 더 벙커’ 모두 제게는 촬영한 작품으로 기억되는 거죠.
Q. 어느새 데뷔 17년 차 배우예요. 촬영장에서 중견급 배우가 됐는데,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을 거 같아요.
무엇보다 나잇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40대에 들어서고 있으니까요. 현장에서 배우로서의 태도가 중요한 거죠. 후배 배우나 스태프들보다 제 나이가 많아지잖아요. 선배님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여러 생각이 들죠. 하지만 아직 50대 형들도 건재하고 있어서요. 병헌 형도 있고요. 그런 선배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다행인 거 같아요. 여전히 열정적으로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까요. 뒤따라가는 후배로서는 든든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