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인간 전여빈과 배우로서 일하는 전여빈이 조화를 잘 이뤄서 건강하게 잘 걸어가고 싶어요. 너무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느리더라도 신중하게요. 하늘이 도와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 기회를 아주 오래 잘 꾸려가고 싶어요”
제니스뉴스와 전여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해치지않아’ 인터뷰로 만났다.
충무로의 ‘괴물 신인’ 전여빈은 다수의 독립영화로 탄탄하게 내공을 쌓아왔다. 단박에 관객들을 몰입하게 하는 그의 강렬한 연기력은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시너지 효과를 내며 대중을 매료시켰다. ‘죄 많은 소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전여빈은 첫 드라마 주연작이었던 JTBC ‘멜로가 체질’에서도 다소 까다로운 캐릭터를 섬세한 표현력으로 다루며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그런 전여빈이 전작과는 180도 다른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설 연휴 극장가를 찾는다.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 차게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변호사 태수(안재홍 분)와 팔려 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된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미션을 그린 이야기로, 전여빈은 평소 모든 일에 느리지만 남자친구 톡에는 0.1초 만에 반응하는 사육사 해경으로 분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전여빈이 ‘해치지않아’와 해경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가졌는지, 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쉴 새 없이 와 닿았다.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만은 확실하게 전달됐다.

‘해치지않아’는 전여빈의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이다. 전여빈이라는 이름을 알린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업 영화이기에 긴장도 됐으나, 그런 것들이 무색할 정도로 편안하고 즐거운 촬영 현장에 "출연료를 받아도 되나"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저희가 가진 상황 자체가 기상천외하잖아요. 동물 탈을 쓰고 동물원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게 재밌고요. 그래서 저희도 현장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했던 거 같아요.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주연 배우 다섯 명의 호흡도 좋았고요. 놀이터에서 노는 기분이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어요. 제가 ‘해치지않아’로 상업 영화 주연을 처음 한 거였는데, 돈을 받으면서 내 직장에서 일하는 건데 이렇게 일이 재미있어도 되는지 생각했죠. 하하. 너무 재미있으니까 돈을 받으면 안 될 거 같다는 말도 했어요”
전여빈의 작품 합류는 손재곤 감독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이전까지 무겁고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았던 그에게 손 감독은 밝은 이미지의 해경과 그가 변장하는 나무늘보 캐릭터를 권했다. 캐스팅을 위한 첫 만남에 대뜸 “나무늘보 역할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한 손 감독 덕에 전여빈은 ‘이게 장난인가?’ 싶었다고.
“이 영화는 ‘죄 많은 소녀’가 개봉하기 전에 제안을 받았어요. 손재곤 감독님이 드라마 ‘구해줘’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저를 보셨대요. 또 제가 찍은 단편 영화 감독님이 손재곤 감독님과 지인이어서 우연히 함께 뵐 기회가 있었어요. 그 이후에 사석에서 저를 만난 기억과 작품에서 절 봤던 기억이 정말 많이 달랐다고 하셨어요. ‘사석에서 봤던 사람의 모습이 작품에서 이런 식으로 빛나는 게 좋아서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더라고요. 그래서 ‘해치지않아’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제게 연락하신 거예요.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카페에서 감독님을 만났어요. 제게 제안하고 싶은 역이 있다고 하시길래 어떤 역인지 물어봤는데, 나무늘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순간 너무 당황해서 ‘이게 장난인가?’ 싶었어요. 처음으로 상업 영화 감독님께서 제게 대사하는 캐릭터를, 오디션도 아닌 역할 제안을 주셨는데 그게 나무늘보라고 하니까요. 하하. 그러면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역할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과 다를 수도 있으니 차분히 읽어보고 거절해도 좋다’고 하셨어요. 돌아가서 바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말 함께 작업하고 싶었고, 이 귀엽고 착한 사람들 속에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거 같아요”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을 통해 독창적인 코미디를 선보인 손재곤 감독이지만 ‘해치지않아’의 독특한 소재는 자칫 모험이 될 수도 있었다. 사람이 직접 동물 탈을 쓰고 동물원 관람객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는 유치하거나 단순한 플롯으로 그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여빈은 손재곤 감독이 보여준 사례와 그의 연출력을 믿었기에 이와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 우려를 크게 하지는 않았어요. 동물 슈트를 입을 때 그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요. 감독님께서 작품 들어가기 전에 사례를 보여주셨어요. 외국에서 동물원 내에 동물인 척 슈트를 입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다가가는 몰래카메라를 보여주셨는데 사람들이 정말 믿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까 단 한 번도 동물을 진짜로 만나본 적 없더라고요.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본 기억을 생각하면 호랑이는 계속 잠만 자고 있었고요. 그래서 저게 모형인지 진짜인지 구별이 안 됐어요. 그래서 믿기 시작한 거 같아요. 이 재밌는 소재를 손재곤 감독님과 만나면 조금 더 다른 호흡과 결로 풀어나가게 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죠”

여기에 이전까지 해보지 못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났다는 점 역시 전여빈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작의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던 전여빈이기에 손 감독이 밝고 사랑스러운 해경이라는 캐릭터를 제안한 것 자체가 정말 감사했다고. 또한 전여빈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해경의 선택이 궁금해졌기에 망설임 없이 이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감독님께 저를 해경으로 떠올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어요. 저는 이 이야기 자체가 일단 좋았어요. 이 기발한 생각과 도전에 뛰어들고 싶었죠. 또 해경이란 인물은 제가 기존에 맡지 않았던 인물이었어요. 해경의 선택이 저를 궁금하게 만들었거든요. 남자친구에게 심적으로 기대기도 하지만, 애써서 모은 돈을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해 버리기도 하잖아요. 그런 용기나 자세 때문에 해경이 궁금했어요. 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게 만들었죠. 나무늘보 분장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찾아본 나무늘보는 60~70cm인데, 어떻게 사람이 변장할 수 있는지 말이 안 되잖아요. 하하. 도전과 궁금증이 컸던 거 같아요”
도전과 궁금증으로 시작한 영화였지만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 덕에 전여빈은 소풍 가는 기분으로 마지막까지 촬영을 마쳤다. 이와 같은 단란한 모습은 영화뿐만 아니라 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 등 배우들이 함께하는 행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최연장자로서 분위기를 이끈 박영규와 아낌없는 믿음을 보낸 손재곤 감독의 노력이 있었다.
“현장 분위기메이커는 박영규 선생님이었어요. 노래도 잘 불러주시고, 자진해서 본인의 성대모사를 들려주시기도 하셨죠. 하하. 선생님께서 나서서 에너지를 내주시니까 후배인 저희는 당연히 마음이 풀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조금 지치더라도 같이 힘이 날 수밖에 없고요. 서로 으쌰으쌰하면서 찍었죠. 또 이야기가 밝고 귀여운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소풍 온 마음으로 찍었던 거 같아요. 겨울에 지방에 있는 동물원을 돌아다니면서 촬영했는데, 단풍이 늦게 들어서인지 현장에 단풍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그래서 정말 즐기면서 촬영했어요.
저희 현장 분위기가 좋았던 건 감독님 덕분인 거 같아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많이 위하시는 분이라서요. 배려가 많은 현장이었어요. 감독님은 스태프, 배우들의 능력과 하고 싶은 각자의 몫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모두가 편안하게 촬영한 현장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누군가 그 사람의 능력을 의심하고 다그치면 조급하거나 시달리는 마음에 즐기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저희는 떨어지는 거 없이 모두가 편하게 즐겼어요”
‘해치지않아’는 가벼운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방법, 동물권 등을 짚으며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자연스럽게 전여빈도 작품을 만들어가며 동물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영화 대사 중에 태수가 까만코의 이상행동을 보고 ‘정형 행동’이라고 얘기하는 게 있어요. 이후에 소원이 ‘아무리 동물원을 잘 꾸며도 시멘트 감옥’이라고 하는 대사가 있고요. 예전에 그런 동물원을 갔을 때 한 동물이 벽에 계속 머리를 쿵쿵 찍고 있었어요. 저는 그때 ‘머리가 간지러워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거든요. 이 시나리오를 읽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정형 행동이고 이상행동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동물에 대한, 동물과 사람이 어떻게 잘 공존해서 사는지 당연하게 생각해보게 된 거죠. 우리 영화의 마무리가 누가 보기에는 정말 심심한 정답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장 사려 깊게, 현실을 다분히 고려한 결말이라 생각했어요. 그 착한 결말을 정말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