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해치지않아’ 전여빈 ② “오래 갈망했던 연기, 느리더라도 신중히 걷고 싶어요”
▲ ‘해치지않아’ 전여빈 (사진=문찬희 기자, 디자인=강예슬 디자이너)
▲ ‘해치지않아’ 전여빈 (사진=문찬희 기자, 디자인=강예슬 디자이너)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인간 전여빈과 배우로서 일하는 전여빈이 조화를 잘 이뤄서 건강하게 잘 걸어가고 싶어요. 너무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느리더라도 신중하게요. 하늘이 도와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 기회를 아주 오래 잘 꾸려가고 싶어요”

제니스뉴스와 전여빈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해치지않아’ 인터뷰로 만났다. 

▶ 1편에 이어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 차게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변호사 태수(안재홍 분)와 팔려 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된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미션을 그린 이야기로, 전여빈은 평소 모든 일에 느리지만 남자친구 톡에는 0.1초 만에 반응하는 사육사 해경으로 분한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강렬하고 무거운 이미지를 선보인 전여빈. ‘해치지않아’에서는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전작과는 다른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을 선보인다. 전여빈에게 실제 자신의 모습은 어떤 쪽에 가까운지 질문하자 무겁고 강렬한 캐릭터,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중간에 가깝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원래 성격 일부를 녹여내며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실제 전여빈은 그 중간인 거 같아요. 역할은 시나리오를 만나서 창조해가는 거라서요. 그 인물을 만날 때마다 제 모습이 녹아있을 거예요. 완벽한 분리는 아니지만 제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을 결합하고 상상하고 창조해서 캐릭터가 되는 거니까요. 그 모든 면이 있는 거 같아요”

▲ ‘해치지않아’ 전여빈 (사진=문찬희 기자)
▲ ‘해치지않아’ 전여빈 (사진=문찬희 기자)

흔히 배우들은 한 캐릭터를 오래 연기하다 보면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어둡고 무거운 캐릭터를 맡을 때 그 후유증이 더하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전여빈은 “무거운 연기할 때도 나름의 성취와 기쁨이 있다”며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비록 작품이 끝나고 캐릭터를 보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카메라 바깥에서까지 힘들지는 않다고.

“감정적으로 힘든 연기를 한다고 해서 배우 전여빈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배우는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발산해서 해소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아주 무거운 연기를 할 때는 그 나름대로 성취와 기쁨이 있고, 밝은 연기를 할 때는 제가 하지 못한 귀여움을 표출하는 게 민망하지만 그 쾌감이 있어요.

그래도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를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는 해요. 작품을 하게 되면 역할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점점 제 안에 이 사람과 상황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거든요. 그런 것들을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이별하는 마음처럼요. 하하. 잘 보내줘야 하거든요.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데 기억은 남아있어서, 잘 정리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향한 남다른 애정과 노력을 기울이는 전여빈에게 연기 스타일이 어떤지 질문했다. 그러자 부끄럽다는 듯 웃던 그는 “저는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사람”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독립영화로 내공을 쌓은 후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혜성처럼 등장한 ‘괴물 신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겸손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기 비결로 대본에 충실한 것과 디렉션을 잘 따르는 것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전 무엇보다 대본에 충실히 하려고 해요. 감독님들이 주시는 디렉션도 잘 흡수하는 편인 거 같아요.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거 같고요. 여러 상황에 유연한 성격이기도 해서요.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이 해봐야 제가 어떤 스타일일지 알 거 같아요. 한석규 선배님도 아직 연기를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제가 철없는 신인 여배우로 나오는데 그때 문소리 선배님께 ‘어떻게 하면 연기 잘할 수 있어요?’라는 대사를 해요. 그때 선배님은 ‘그냥 하는 거’라는 답을 하시죠. 그 말이 요즘 자꾸 생각이 나요. 계속 고민하고 발전하고 발견하는 거 같아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전여빈의 작품 선택 기준도 궁금해졌다. 대중들에게 주로 알려진 작품인 영화 ‘죄 많은 소녀’나 드라마 ‘구해줘’, ‘멜로가 체질’만 봐도 그가 특정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역시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작품 선택 기준이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우선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해요. 글을 읽다 보면 그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고, 확신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감인 거 같기도 해요. ‘반드시 이 작품을 해야 해’, ‘이 캐릭터를 만나야겠어’라는 촉이랄까요. 동물적 신경이 들 때가 있어요. 그때는 이 이야기가 어떤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선택하는 거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 확신이 든다면요. 흥미가 생기면 주저 없이 선택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정말 많이 고민해요. 한 걸음씩 잘 걷고 싶어서요”

▲ ‘해치지않아’ 전여빈 (사진=문찬희 기자)
▲ ‘해치지않아’ 전여빈 (사진=문찬희 기자)

이처럼 신중을 기해 선택한 ‘해치지않아’는 전여빈의 기대처럼 가까운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가족 시사회에 함께한 전여빈의 가족과 ‘멜로가 체질’의 동료 배우들 모두 전여빈의 이미지 변신에 함께 기뻐했다고. 특히 ‘멜로가 체질’에서 러브라인을 선보였던 손석구와 한 매체를 통해 함께 인터뷰했던 최희서는 시사회 후 SNS에 ‘해치지않아’ 홍보까지 나서는 등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가족들은 정말 좋아했어요. 이 작품에 참여한 게 자랑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해치지않아’가 마냥 웃기기만 하는, 웃음만 던져주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영화인데 가족들이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그 일원으로서 함께 있는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신 거죠.

동료나 친구들은 이 참신한 기획에 배우로서 전여빈의 다른 면모를 보여줘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멜로가 체질’ 팀이 아주 많이 왔거든요. 천우희 언니는 한참 ‘앵커’ 촬영 중이라 못 왔는데 나머지 배우들이 다 오셨어요. 이병헌 감독님이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무늘보를 봤어. 잘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원래 표현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라 좀 놀랐어요. 희서 언니와는 이전에 같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작품을 같이 한 것도 아니고, 아주 자주 보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가까워진 사이가 돼서 자주 연락해요. 석구 오빠는 이미 희서 언니와 절친이에요. 제가 ‘멜로가 체질’에서 석구 오빠와 재미있는 케미스트리를 선보여서 셋이 함께 보자고 이야기하다가 이번 시사회에 초대해서 두 사람이 응원해주러 온 거죠”

이처럼 전여빈은 대중뿐만 아니라 동료 배우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충무로의 ‘괴물 신인’을 넘어 대세 배우로 발돋움한 그는 오래 기다렸던 순간인 만큼 천천히, 신중하게 배우로서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인간 전여빈과 배우로서 일하는 전여빈이 조화를 잘 이뤄서 건강하게 잘 걸어가고 싶어요. 너무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느리더라도 신중하게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배우와 연기를 정말 오래 갈망했거든요. 하늘이 도와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 기회를 아주 오래 잘 꾸려가고 싶어요.

새롭게 얻고 싶은 수식어요? ‘괴물 신인’보다 더 좋은 수식어가 뭐가 있을까요? 하하.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정말 좋긴 하네요. 전 연기 칭찬해주시면 그게 다 기쁜 것 같아요. ‘역할 보면 같이 감정 이입됐어요’, ‘좋았어요’라고 해주시는 게 가장 큰 칭찬이죠. 그 인물로 바라보고 믿어주시는 거 말이에요”

탄탄히 배우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전여빈이지만 그에게도 연기의 꿈을 포기하고자 했던 순간이 있었다.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에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도 할 정도였다. 기로에 서 있을 때 참여했던 첫 주연작 ‘죄 많은 소녀’의 폭발적인 호응으로 지금의 배우 전여빈이 존재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제가 연기하고 싶어도 기회를 만나는 게 어려워서요. 그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이 일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거든요. 그때가 ‘죄 많은 소녀’ 촬영하던 29세 즈음이었어요. 사회인으로서 스물아홉이면 스스로 책임지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잖아요. 그때 저는 제 몫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할 때라서요. ‘이 일에 재능이 없는 걸 수도 있다’, ‘이 꿈은 내 욕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죄 많은 소녀’가 첫 주연작이었는데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른 살까지도 제 몫을 못 하고 있으면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고 가족한테도 얘기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 좋아하는 일로 기회를 만나게 돼서 정말 감사해요”

쉼 없는 작품 활동으로 보낸 지난 2019년을 보낸 전여빈은 ‘해치지않아’로 2020년 새해를 시작한다. 상반기 ‘해치지않아’로 관객들을 만나는 그는 하반기에 영화 ‘낙원의 밤’으로 또 다른 변신을 선보일 예정. 조금은 쉬어갈 법도 하지만 여전히 그는 새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이미 ‘믿보배’로 인정받기 시작한 전여빈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새해 목표는 일단 ‘해치지않아’를 잘 홍보하는 거고요. 하하. 상업 영화로는 처음 인사드리는 거니까 잘 만나고 싶어요. 또 하반기에는 ‘낙원의 밤’이라는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해치지않아’ 홍보 이후에는 약속된 촬영이 없어서 시나리오 열심히 읽고 좋은 작품을 만날 준비를 해야죠. 사실 ‘낙원의 밤’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어요. 12월 중순에 끝났는데 지난 1년간 정말 쉬지 않고 소처럼 달렸거든요. ‘죄 많은 소녀’ 개봉하고 ‘해치지않아’, ‘천문: 하늘에 묻는다’ 촬영, ‘멜로가 체질’ 촬영에 ‘낙원의 밤’ 촬영까지 하고 나서 ‘해치지않아’ 개봉을 준비해서요. 이제는 조금 더 쉬면서 갈고 닦으려고 했는데 ‘해치지않아’ 개봉을 준비하니까 얼른 다시 새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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