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① “이해하기 어려웠던 캐릭터, 가장 심플하게 연기했다”
▲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사진=쇼박스)
▲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사진=쇼박스)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연기는 중독 같아요. 얼른 다시 일상의 평화로움에서 벗어나 큰 갈등이 있는 극으로 들어가고 싶고요. 그게 배우들이 계속 작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지 않을까 생각해요”

선악을 오가며 넓은 연기 폭을 선보이는 배우, 이희준이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변신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그는 크고 위압적인 몸을 하고, 과격한 말투와 행동을 통해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 충성을 연기한다. 박통(이성민 분)의 경호실장 곽상천으로 분한 이희준의 모습은 이전까지 대중들이 알던 이미지와는 다른 결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희준의 또 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평소 관객들이 아는 이희준과는 외형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180도 변화한 캐릭터를 입고 114분의 시간을 종횡무진 누빈다. 팽팽한 긴장을 유발하기도, 의외의 실소를 선사하기도 하는 이희준의 연기 변신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다.

색다른 캐릭터를 입고 스크린을 찾아온 이희준을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도전한 새로운 연기와 캐릭터를 향한 깊은 고찰을 진솔하게 담은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사진=쇼박스)
▲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사진=쇼박스)

Q. 영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요.
기술 시사와 언론 시사를 포함해서 총 두 번 봤는데, 처음 봤을 때는 조금 차갑다고 느꼈어요. 병헌 형이 도청하는 신에 클로즈업이 들어갔을 때 정말 좋은 거예요. 음악도 나오고 그 인물의 심리도 공감할 수 있을 거 같고요. 그 와중에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고 다음으로 넘어가서 ‘더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으레 보던 영화라면 김규평과 혁명의 순간들, 한강 다리를 건너는 신 같은 게 한 번은 있을 법하잖아요. 그런 게 없이 아주 절제돼 있어서 차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볼 때는 소름이 끼쳤어요. 차가운 모습이 다 의도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게 위화감을 주려는 것도 같고요. 또 곽도원 형의 마지막 장면에서 구두가 벗겨진 양말을 보는 것과 병헌 형이 차에서 양말만 신은 발을 보는데, 나라를 좌우하는 인물들이 마지막엔 신발도 없이 가는 게 한 사람처럼 겹쳐져서요. 그런 게 정말 놀라웠어요. 마지막에 실제 전 장군의 사건 발표와 김재규의 최후 변론이 동시에 뜨니까 ‘이 두 가지는 팩트야. 너희는 어떤 생각이야?’라고 나머지는 관객들에게 맡기는 게 느껴져서 정말 놀랐어요. 정말 차갑게 연출하신 의도가 있구나 싶어서요. 

Q. 이미 ‘마약왕’에서 우민호 감독님과 한 번 호흡을 맞췄어요. 원래 감독님 스타일이 이렇게 세세한 편인가요?
전혀 아니에요. 병헌 형이 장난삼아 말한 거지만 ‘마약왕’ 때는 뜨겁게 연출하셨어요. 하하. 그때는 현장에서 생기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저나 (송)강호 선배님이 애드리브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일체 그런 게 없었어요. 처음 제가 등장하자마자 각하가 김규평(이병헌 분)과 집무실에 들어가잖아요. 그때 제 바스트 샷도 처음에는 ‘김규평이 왜 저렇게 일을 못 하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는데, 다음에는 각하를 향한 서운함도 표현해보자고 하셨고요. 아주 섬세하게 대화하면서 촬영했어요.

Q.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마약왕’ 마지막 촬영 때 부산에서 올라가야 하는데 감독님이 ‘하루 더 있으면서 맥주 한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남산의 부장들’을 제안하셨어요. 이후에 대본을 보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이 선배님들과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았는데, 제가 곽상천을 이해하지 못해서 걱정됐어요. 왜 이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저는 이해가 안 되면 연기를 못 하는 배우라, 어떻게 확신 있게 말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배우로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작업이었어요. 곽상천이 어떻게 그런 것들을 믿게 됐는지 생각하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니까 곽상천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가 보기에는 모든 나라에서 그런 과정을 겪어서 민주주의로 가니까 아주 당연한 최선의 과정인 거죠. 거기서 왜 김규평이 딴지를 거냐는 거고요. 일체의 사심 없이 이건 정말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사실 무서운 거죠. 

Q. 곽상천은 박통과 김규평과의 관계가 대조적이라 눈길을 끌었어요. 어떤 식으로 관계를 설정했나요?
곽상천은 오로지 각하를 위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일을 겪고 함께 혁명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 거죠. 곽상천에게는 그런 계기와 세월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김규평을 봤을 때 정말 답답했을 거 같아요. ‘정보부장이 해야 하는 일을 당연히 알고 있을 텐데 왜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하극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김규평에게 충고해야 하고, 알려줘야 하고, 정신 차리게 하는 게 우선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야만 다른 캐릭터가 저를 평가할 때 그렇게 보일 거 같았어요. 누군가는 권력욕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안하무인이라 할 수도 있죠.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곽상천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런 상상을 많이 했어요. 오로지 각하의 심경과 나라를 위한 거라고요. 그게 무서운 거죠.

작품을 앞두고 배우로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그런 거였어요. 곽상천이 무엇을 믿고 있고, 어떤 확신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해서 이런 것들을 믿게 됐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했어요. 결과적으로 곽상천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심 없이, 개인의 권력욕 없이 각하를 위해서, 각하의 의중을 미리 알아서 잘하려고 애쓴 사람 같더라고요. 곽상천이라는 인물이 지금 제 앞에 있어서 ‘너는 다음에 네가 대통령이 될 거로 생각했어?’라고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했을 거 같아요. 혹시나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정말 자책하면서 눌러 없앴을 거예요. 그런 믿음을 가졌던 인물이 아닐까요. 영화에서 보이는 건 이게 다지만 그 믿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했어요. ‘혁명 때부터 어떤 일들을 겪어서 각하를 이렇게 믿을까’라는 것들을 구축하는 데에 애를 썼어요.

Q.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나요?
많이 찾아봤어요. 다양한 입장의 자료를 찾아봤죠. 그러면서 이 영화에서 곽상천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한 거 같아요. 일단 병헌 형을 화나게 하고요. 하하.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가’를 찾는 게 중요했어요. 또 이 극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가 중요했고요. 곽상천은 한 번도 읊조리는 대사가 없어요. 다 지르는 대사라 어떻게 보면 심플하다고도 볼 수 있죠. 평소 이희준이 제안받았던 역할은 레이어가 있는데, 이번에는 그 레이어를 제거하는 게 어려웠어요. 잠깐 등장하더라도 각하 눈치를 살피거나 의문이 있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말 충정을 가지고, 사심 없이 믿고 따르는 그런 것들을 위해서 레이어를 많이 제거하면서도 어색했어요. 초반에는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갈 때 ‘여기까지만 해도 되나?’, ‘너무 심플하게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필요하고, 이 인물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어요.

▲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사진=쇼박스)
▲ ‘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사진=쇼박스)

Q. 이번 작품으로 이병헌, 이성민 씨와 호흡했는데, 함께 연기한 소감이 궁금해요.
영화를 찍을 때도 재미있었지만 작품을 두 번째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이성민 선배님이 연기한 캐릭터는 특별한 설명이 없잖아요. 계속해서 장면만 툭툭 나오는데 그 장면들이 연결도 안 돼요. 그런데도 이 사람이 40일간 그 고뇌와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늙어가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저건 어떻게 하는 거지? 머리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병헌 형은 심리적 갈등을 정말 섬세하게 잘 묘사한 거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다 빨아먹고 싶지만 소화가 안 되겠죠? 하하. 제 건 따로 있을 거예요.

Q. 전두혁으로 등장한 서현우 씨와의 장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현우가 학교 후배거든요. 졸업해서는 처음으로 함께 작품을 하는 건데, 놀랐어요. 대사가 ‘예’ 밖에 없거든요. 하하. 그것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까’ 생각했죠. 마지막에 전두혁이 대통령 자리를 쳐다볼 때 섬뜩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봐서는 그런 표현이 안 되거든요. ‘그 인물로서 많은 고민을 했구나’라는 게 느껴져서 정말 무섭더라고요. 현우는 좋은 배우인 거 같아요. 머리 스타일도 실제로 반을 밀어서 그렇게 만든 거예요. 저보다 심리적으로 더 큰 노력을 한 거 같아요. 하하.

Q.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됐는데, 실제 촬영할 때는 어땠나요?
현장에서도 텐션이 있었죠. 애드리브도 안 하려고 하고요. 하지만 그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런 공기가 생기니까요. 배우들은 그럴 때 긴장도 되지만 지치지는 않거든요. 마약 같은 거죠. 그 극적인 상황 속에서 긴장감이 굉장히 짜릿해요. 이병헌 선배님과 멱살 잡을 때도 리액션하는 순간들이 재미있어요. 이 캐릭터들이 각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갈등을 연기하는 거라서요. 그래서 중독 같아요. 얼른 다시 일상의 평화로움에서 벗어나 큰 갈등이 있는 극으로 들어가고 싶고요. 배우들이 계속 작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Q. 이희준 씨가 가장 긴장하면서 본 장면이 있다면요?
마지막 순간에 김규평이 언제 총을 쏠지를 아는데도 긴장되더라고요. 그건 정말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옆에서 계속 기분 나쁘게 깐족거리는 제 대사도 그렇고요. 하하. 재미있었어요. 김규평이 총을 쏜 이후에는 전부 한 컷으로 찍은 거였거든요. 자갈밭 걸어가는 것까지 한 컷이에요. 그게 한 컷인 줄 모를 정도로 연기했다는 게 대단한 거 같아요.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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