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그날의 총성을 냉철한 눈으로 바라본 이유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그간 열정적으로 영화를 담아온 제작자 우민호 감독이 냉철한 눈으로 돌아왔다. 뜨겁게 들끓는 시선을 내려놓고, 자신을 억누르는 연출로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10.26 사건이 일어나기 전 40일간의 기록을 담은 작품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던 일인자와 그에게 충성한 이인자, 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들며 ‘왜 충성이 총성으로 바뀌었는가’를 탐구한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대신 깊이 있게 다루는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들도 숨죽인 채 긴장하게 된다.

우민호 감독의 작품은 대중들이 알 법한 권력, 그 이면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담으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왔다. ‘남산의 부장들’ 역시 다수의 미디어에서 다뤄졌고, 역사 시간에 배웠을 10.26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시간을 담으면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향한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기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날의 사건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돌아온 우민호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장 중립적으로 ‘남산의 부장들’을 담기 위해 기울인 노력부터 영화를 통해 던지고자 했던 화두까지 털어놓은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Q. 언론시사회 이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데, 기분이 좋을 거 같아요.
대중 반응은 더 기다려봐야 할 거 같아요. 기자들이나 평론가, 관계자들은 나쁘지 않다고 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제가 찍은 영화 중에서는 가장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 그건 좋아요. 지금까지는 제가 의도한 대로 영화를 봐주신 거 같고요. 영화가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대로 보일 수 있잖아요. 그것도 영화의 힘이지만요. 

Q. 의도한 게 무엇인가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 영화가 들뜨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그 시선이 차갑고, 그래서 더더욱 긴장감이 생긴다는 점이에요. 사건이나 역사에 대해 제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지 않았고요. 방점을 찍고 싶지 않았어요. 이 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영화고, 그 내면과 감정에 방점을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궁정동 안가 장면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거죠. 근현대사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는 걸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맨 마지막까지도 상반된 진술 속에서 선택은 관객들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Q. 원작을 영화화하며 어떤 것에 가장 주안점을 뒀나요?
일단 제목을 지키자는 거였어요. 저는 제목이 가장 좋았어요. 또 원작이 가진 정신, 화자가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오려 노력했죠. 제가 영화를 뜨겁게 만드는 스타일이잖아요. 이번에는 억누르면서 제가 김 부장이 된 것처럼, 저를 드러내지 않고 찍으려고 노력한 거 같아요.

박용각과 관련된 실제 사건은 중앙정보부장 명령으로 그 일이 저질러졌다고 발표가 돼 있어요. 그 외 다른 소스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경호실이 대통령을 향한 충성경쟁에 가담했다는 말도 있죠. 그걸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거예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흥미로운 지점은 그곳이었어요. 파리에서의 사건에서 10.26 사건까지 불과 20일에 불과했다는 거죠. 당시에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향한 충성으로 하기 싫은 일을 했는데, 불과 20일 만에 그 충성이 대통령을 향한 총성으로 바뀐 점이 이상했어요. 그게 이 이야기의 메인이죠. ‘20일 만에 어떻게 저럴 수 있었을까’라는 지점에서 시작한 거 같아요.

Q. 극중 인상적인 대사들이 정말 많았어요. 대사 중 원작에서 가져온 부분이 있나요?
대사는 거의 제가 만들었어요. 일정 부분 어떤 이야기를 했다는 기록 정도는 있었죠. 김규평의 ‘대국적으로 정치하라’거나, 곽상천의 캄보디아 이야기 같은 거요. 이전 작품까지는 제가 쓴 것 중에 들뜨는 대사가 있었어요. 자극적인 대사들도 있고 웃기려고 하는, 의도가 드러나는 대사들이 있었죠. 그전까지는 품 잡는 대사들, 척하는 대사들을 썼다면 이번엔 그런 것들을 가급적이면 배제했어요.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어요.

Q. 박통 역의 이성민 씨 분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준비한 건가요?
박 대통령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잖아요. 어린 사람들도 그 얼굴은 알고요. 그래서 박 대통령의 얼굴은 어느 정도 싱크로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판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귀 같은 특정 부분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했죠. 전체를 똑같이 본뜨진 않았지만, 리얼리티를 보여줘야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닮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 중요한 거죠. 흔히 ‘잘남’을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런 걸 연기하는 게 배우고요. 우리 배우들도 그 외모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캐릭터의 닮음을 연기하는 게 중요했어요. 얼굴은 조금 다르지만 내면이 설득력 있으면 봉합될 수 있다는 거죠. 

Q.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병헌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거 같아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죠. ‘내부자들’ 때는 많은 이야기를 한 거 같지 않아요. 이번 작품 현장에서 ‘마약왕’이 망해서 제가 조용해졌다고 하는데 틀린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하. 현장에서 신나서 떠들 수는 없잖아요. 대신 병헌 선배와 다른 배우들과 조용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거 같아요. 그러면서 딱 한 가지를 말했어요. ‘어딘가에 치우치지 말자’라고요. 김규평 캐릭터도 방점을 찍지 말고 정답을 주지 말자고 했죠. 더 세밀하게 내면을 파헤칠 수 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느낌으로 남아있길 바란다고 했어요.

Q. 전두혁 역의 서현우 씨는 대사가 거의 없었어요.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다루고 싶었나요?
영화에서 유일하게 내면을 다루지 않는 게 전두환이에요. 역사적인 사실에 가장 가깝게 끝났죠. 이 사람의 감정을 다루기보다는 당시 어떤 역할을 했고, 10.26 사건 이후 어떤 포지션에 있었고, 어떻게 됐는지를 보여주려 했어요. 사건 이후 금고에서 돈을 빼갔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 규모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상상 못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에 대해서는 당시 비서실에 있던 사람이 증언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보안사령관이 권력 일인자의 자리를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앉은 건 아니잖아요.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차지한 거라서, 전두혁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런 상징적인 모습을 건축한 거죠. 그의 내면은 크게 다루고 싶지 않았어요.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사진=쇼박스)

Q.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는데, 캐릭터들의 이름을 바꾼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제 창작의 자유를 조금 더 확보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실명을 쓰기에 부담스러웠고요.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만 인물의 내면과 심리에 집중하는 영화라 아무래도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이름을 바꿨어요.

Q. 연출만큼 음악도 영화 분위기에 큰 역할을 한 거 같아요. 음악은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요?
조영우 음악감독님과 저는 네 작품을 함께하고 있어요. 제 데뷔작품 빼고는 전부 감독님과 했고, 그래서 제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분이죠. ‘남산의 부장들’은 대사가 정말 중요했어요. 특히 김규평은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라서 대사를 통해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해줘야 했어요. 그래서 음악이나 사운드가 대사 밑으로 들어오는 콘셉트로 믹싱했어요. 음악도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되 인물보다 앞서 나가면 안 되고요. 그러기 위해서 볼륨 조절에 많은 신경을 썼어요. 미묘하게 컸다가 낮아지고요.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그래서 더 귀 기울여지는 효과들을 노렸죠. 

Q. 우민호 감독님이 선정한 ‘남산의 부장들’ 명장면, 명대사는 무엇인가요?
많은 분이 이야기하신 박용각과 김규평의 맨발 장면은 저도 좋아해요. 실제 사건에서는 박용각과 김규평이 선후배 사이예요. 영화에서 두 사람을 친구로 바꾼 이유가 이 장면과 일맥상통하는데, 저는 영화에서 두 인물이 한 명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둘 다 일인자에 쓰이기만 하고 버려지는 비극적인 인물이라서요. 박용각 대사 중 ‘나처럼 된다’는 말도 있죠. 두 사람의 마지막에 구두도 없이 양말만 신은 발을 보여준 건, 최고 권력을 누렸던 군인 출신의 인물들이 최후의 순간에는 자신의 구두조차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끝나는 장면을 통해 데칼코마니처럼 보이게 한 거예요. 마지막 박용각과 김규평 얼굴 클로즈업 장면도 비슷하게 촬영했어요. 굉장히 치열하고 팽팽한 공기가 클로즈업 이후 허무하게 빠지는 거죠. 자신의 발을 보면서요.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나. 구두 한 짝도 신지 못한 채 가는 게 내 인생인데’라는 그런 느낌을 포착했던 거 같아요.

Q. ‘내부자들’부터 ‘남산의 부장들’까지 권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무척 흥미롭죠. ‘저 권력자들은 우리와 대체 어떤 부분이 다를까’를 생각하는데, 보면 볼수록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도 우리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이나 경쟁이 있잖아요. 어느 곳에 속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지, 감정의 근원은 정말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심지어 친구들 간의 우정도 그렇잖아요. 둘만 있으면 괜찮은데 한 사람이 더 끼게 되면 누군가 위주로 가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삐치면서 질투하고 멀어지기도 하죠. 그런 보편적인 감정이 당시 청와대와 궁정동 안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Q. 이번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저는 10. 26이라는 근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이 거대한 사건이 뚜렷한 대의나 논리적인 인과관계로 벌어진 게 아니라, 개인 간의 관계나 감정에서 오는 균열, 파열부터 비롯된 건 아닐까 생각해요. 그 감정이 특별한 게 아니라 충성, 배신, 존경, 사랑, 질투, 시기, 집착 같은, 사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거죠. 거시적으로 10.26을 조명하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거대한 사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올해 감독님의 작품 계획이 궁금해요.
준비하는 건 아직 없어요.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로 계속 쉬지 못했거든요. ‘남산의 부장들’을 촬영하면서 ‘마약왕’이 개봉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라 조금은 쉬어야 할 거 같아요. 대중들이 ‘남산의 부장들’을 어떻게 보시느냐에 따라 다음 작품이 결정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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