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새해부터 바쁘게 달리기 시작한 배우 이성민이 전혀 다른 매력의 두 작품을 선보인다. 매번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기는 그의 열일 덕에 관객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이성민의 열일 행보는 해가 바뀐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설 연휴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이하 ‘미스터 주’)’와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들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tvN 드라마 ‘머니게임’으로 안방극장까지 사로잡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한 번에 선보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로 마치 세 사람의 이성민을 만나는 것 같다.
장르를 넘나드는 이성민의 활약 비결은 지치지 않는 도전 정신에서 비롯된다. ‘미스터 주’를 통해 가족 영화를 선보이고 싶었고,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전혀 닮지 않은 배우가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도전을 해내고 싶었다고 하니, 그의 도전 정신이 계속될수록 행복해지는 건 수많은 얼굴의 이성민을 만나는 관객일 것이다.
쉼 없는 연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성민을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스터 주’와 ‘남산의 부장들’, 두 작품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과 연기의 원동력 등을 유쾌하게 털어놓은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각 캐릭터 간의 관계가 중요해 보였는데, 그만큼 현장 분위기도 달랐을 거 같아요.
완전히 달랐죠. 우민호 감독도 굉장히 집중하셨어요. 보통 촬영 셋업할 때 릴렉스하고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거의 그러지 않으셨어요. 셋업이 길어져도 모니터 앞에 계속 계셨어요. 병헌 씨가 잠깐 이야기했던 게 그런 맥락이에요. 굉장히 진중하셨고 예민하셨어요. 그런 상황에 배우들이 뒤에서 웃을 수도 없었죠. 작품이 주는 섬세함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우민호 감독 스타일이 배우들에게 연기를 요구하거나 정해두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피드백하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첫 테이크 때 감독에게 보여줄 게 어떤 연기인지 집중하고 있어야 했어요. 그래야 감독님이 모니터링하고 나서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었거든요. 첫 연기가 가이드 같은 거라서요.
이번에도 특별한 디렉션을 많이 안 하셨어요. 배우들을 많이 믿어주셨고, 배우들도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거죠. ‘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호흡을 많이 맞춘 사람은 병헌 씨였는데 말이 없는 심리 게임이라고 할까요. 말과 말 사이의 전쟁 같았어요. ‘공작’에서는 대사와 말의 액션이 중요했는데, 그런 게 조금 달랐어요. 병헌 씨와 대화하다가도 그 사이가 빌 때 좋더라고요. 그런 미덕이 있는 거 같아요. 병헌 씨도 굉장히 조용하고, 처음 만나는 배우라서 말을 잘 못 하겠더라고요. 희준이는 아는 친구지만 작업할 때 말을 잘 안 해요.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 하하.
Q. 우민호 감독과 ‘마약왕’ 이후 두 번째 작업인데,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우민호 감독님도 ‘남산의 부장들’은 굉장히 절제하신 거 같아요. ‘마약왕’ 때도 그런 경험이었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어떤 것을 끌어내기 위해 집요하지는 않았죠.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들을 보고 거기서 조금 더 가거나 줄이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췄어요. ‘남산의 부장들’을 하며 느낀 건 특히나 절제를 많이 하면서 촬영하셨다는 점이에요. ‘마약왕’ 때는 정말 많이 찍어서 편집했다고 하더라고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필요한 콘티 대로 명확하게 촬영하셨어요.
Q. 개봉 이후 박통의 걸음걸이 등 고증이 잘 됐다는 호평이 이어졌어요. 캐릭터 표현에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을 하자고 할 때 일단은 오케이했어요. ‘마약왕’ 촬영 때였는데 이유를 묻지는 않았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고,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아는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거든요.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승낙했죠.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저는 실존 인물과 닮지 않았고, 기존에 역할을 하셨던 많은 배우는 비슷한 얼굴 형태나 외모를 가진 분들이어서 그걸로 싱크로율을 높이셨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보니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감독님도 분장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신 거죠. 그 과정에서 박통의 특징적인 부분을 생각했죠. 잇몸도 보철기구를 끼운 거라 발음이 힘들었어요. 머리는 최대한 분장팀에서 맞춘 거고요. 의상은 당시 그분의 옷을 만들던 분이 계셔서 그분을 찾아가 제작했어요.
분장이 끝났으니 다음은 제 영역인데 워낙 인물에 대한 자료들이 많더라고요. 특이한 걸음걸이도 있고, 담배를 들고 있는 손 모양까지 비슷하게 하려고 했어요. 박통은 뒷짐도 많이 지는데 그때 손 모양도 독특하더라고요. 또 코트를 입었을 때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는 모습 같은 것들을 많이 참조했죠. 목소리는 실제로 대화하는 육성이 거의 없었어요. 대개 뉴스에 나오는 장면이나 연설 위주였죠. 어떤 자료를 보니까 그분의 모친 잔칫날에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있더라고요. 거기서도 노래를 했고요. 그래서 그걸 흉내 냈죠. 독특한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실제 있던 사람을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연기한 게 처음이라서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고요. 가끔 촬영에서 비추는 제 그림자를 보면 헉하고 놀랐어요. 영화를 보며 가장 기분 좋았던 건 헬기 타고 갈 때였어요. 코트 주머니에 손 넣고 걷는 모습을 보는데 제가 생각해도 잘했더라고요.
Q.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지쳐가는 박통의 변화가 인상적이었어요.
박통에게는 그 긴 시간 동안 일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가진 피로도와 그 살벌한 시대에 일인자로서 가진 불안감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불안감을 보여주자는 게 이 역할의 정서였던 거 같아요. 영화 속에서 시간이 변하잖아요. 그러면서 피로도를 조금씩 줬죠. 그로 인해 오는 판단력의 명쾌함이 떨어지는 모습도 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역할을 풀어갔어요. 제가 이 역할을 맡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보편적인 선에서 보여줬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거 같아요. 장기간 그 자리에 있던 일인자의 외로운 피로도, 당시에 부인도 없던 시절이라 그런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Q. 박통에게는 김규평과 곽상천, 정반대의 두 참모가 있었어요. 실제 이성민 씨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요?
곽상천(이희준 분)은 제 상식에 봤을 때도 말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하하. 촬영하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이런 사람을?’ 싶을 때가 있었죠. 극중 곽상천이 보여주는 빠른 동작이 있어요. 김규평(이병헌 분)은 담배를 놓치는데 재빠르게 와서 담뱃불을 붙여준다든가 하는 거요. 영화에서는 이인자끼리 경쟁을 붙여서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 역할이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김규평이 상식적이고 제 스타일에 맞지 않나 싶어요. 감독님에게도 ‘곽상천을 곁에 두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라고 하기도 했어요. 하하.
Q. 정치적인 색을 가진 실존 인물을 연기했는데, 영화 외적인 해석에 곤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나요?
주위에서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딸까지 ‘괜찮아?’라고 하더라고요. 요새는 관객들도 현명하시고, 영화는 영화로 봐주시거든요. 또 저희 영화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그런 식의 색을 가질 수 있는 사상이나 이데아를 강요하지 않으니까요. 영화에 나오는 몇 가지 사건들은 이미 역사적인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분장하고 연기하는 게 잘못되면 욕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 같아요.
Q. 이제는 예능에서도 이성민 씨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거 같아요.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이제는 저도 변해야죠. 하하. 최근에 ‘남산의 부장들’ 무비 토크를 촬영했는데 병헌 씨가 이런 걸 처음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병헌 씨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약간 다르구나 싶었어요. 제가 병헌 씨보다 나이는 많지만 영화계에서는 후배잖아요. 나이는 50이 넘었지만 영화는 40 넘어서 시작했고요. 우리 시대는 배우가 관객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시기라서요. 요즘은 그런 울렁증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예전에는 예능에서 딸에게 영상 편지 같은 걸 요청하면 인사도 고개 숙이면서 했어요. 하하. ‘나는 배우인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하면서 말도 못 하고 있었죠. 자꾸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고 그중에 한 명씩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조금 편해지고 있어요. 작품을 홍보할 때 어떤 선까지는 제가 해야 할 몫이 있는데, 제가 하지 않으면 같이 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니까요. 요즘은 홍보할 때 제가 가장 파이팅 넘칠 거예요.
Q. 바쁘게 2020년을 시작했어요. 올해의 목표가 궁금해요.
작품을 따로따로 선보이면 매를 여러 번 맞아야 하는데 한 번에 맞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결과는 나와봐야 아는 거니까, 관객들에게 맡겨야죠. ‘머니게임’은 한 회 분량 정도만 촬영하면 끝나고, 이후에 ‘리멤버’라는 영화를 시작해요. ‘검사외전’ 이일형 감독님 작품인데 그 영화에서는 또 다른 도전과 시도를 해야 해서 가장 신경 쓰이죠.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거 같아요. 또 지난 여름에 찍은 ‘8일의 밤’ 작업이 끝나서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