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2019년 하면 ‘스토브리그’가 생각날 거 같아요. 연말연시를 함께한 작품인데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줘서요. ‘스토브리그’를 떠올리면 ‘참 좋았지’라고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배우 박은빈이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지난 14일 종영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그는 드림즈의 운영팀장 이세영으로 분해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와 함께 든든히 팀을 이끄는 모습을 선보였다. 팀을 향한 오랜 애정과 관심, 옳지 않은 일에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세영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뿐만 아니라 짜릿한 사이다를 선사했다. 이세영을 향한 사랑만큼 박은빈을 향한 대중의 애정 역시 한층 더 높아졌다.
어느덧 박은빈은 데뷔 24주년을 맞이했다. 아역으로 시작해 성인 배우로 연착륙한 그는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대중들과 만났다. 경력으로만 보면 중견 연기자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박은빈은 한 작품을 만날 때마다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여전히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무궁무진하기에, 박은빈의 다음 선택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된다.
‘스토브리그’ 종영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 모습을 준비 중인 박은빈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토브리그’와 이세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들, 미처 드라마에 담지 못했던 작품의 뒷이야기까지 풀어놓은 시간을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폭발적인 호응 속에서 드라마가 끝났어요. 종영 소감이 궁금해요.
생각 이상으로 작품이 잘된 부분이 커서 좀 얼떨떨한 거 같아요. 인기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비로소 실감이 나요. 종영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Q. 야구라는 쉽지 않은 소재인데, 어떤 매력에 작품을 선택했나요?
제가 야구 관련 드라마를 처음이라고 망각하고 있었는데, 첫 주연작이었던 ‘프로포즈 대작전’에서 야구부 에이전트 역할이었더라고요. 하하. 그때는 야구 내용보다는 멜로가 더 커서 잊고 있던 거 같아요. 이번에는 야구를 소재로 깊숙하게 다루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거 같아요. 제가 야구를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대본 자체가 가진 힘이 컸고, 작가님과 감독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니까 정말 좋은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여러모로 모두 함께 좋은 만남을 가졌던 거 같아서 제게도 참 보람찬 작업이었어요.
Q. 현재 프로야구단에는 여성 운영팀장이 없어요. 자료 준비하기에 어려웠을 텐데,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구축했나요?
현존하지 않는 배경을 가지고 있고,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저조차도 참고할 만한 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고된 부분이 있던 거 같아요. 드라마가 리얼리티를 따져서 모든 걸 현실성 있게 다뤄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아무래도 현실과의 간극이 컸던 만큼 조금이라도 더 노련하게 보이고 유능하게 표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만큼 극중 세영에게 주어진 힘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만큼 더 유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로도 세영이 일을 잘했거든요. 하하. 일을 잘하는 부분에서 ‘충분히 운영팀장이 될 만하다’는 개연성을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Q. 평소에 야구는 좋아하는 편인가요?
사실 잘 몰랐어요. 저도 백 단장님이 1회 때 말한 것처럼 룰 정도만 알았는데 이번에 많이 공부하게 됐어요. 기록원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세영의 설정에 있어서, 준비하며 경기 기록원의 자질을 찾아봤죠. ‘여기서부터 시작했다면 세영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 많은 노력을 거쳤겠구나’, ‘많은 역경을 스스로 이겨내는 시간이 있었구나’라고 느꼈어요. 동시에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이런 세계에서는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겠구나’ 하는 경외심이 들었어요. 마침 준비할 때 정규시즌 마지막 즈음이어서 직관도 갔고요.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을 했어요.
Q. 이세영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며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세영이 10년 동안 근속했다는 배경이 있고, 단장의 오른팔인 운영팀장이라서요. 백승수가 모르는 부분을 옆에서 이야기하고, 시청자들이 모를 부분을 설명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했어요. 드림즈의 서사 담당이랄까요? 하하. 코치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영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 있고요. 고세혁(이준혁 분)의 선수 시절, 팀장 시절 모습 등은 세영이 관찰했고 가장 잘 아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감성적이지만, 이성을 챙길 건 챙겨서 아닐 땐 아니라고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Q. 이세영은 운영팀장으로서 선수단뿐만 아니라 프런트 직원들도 이끄는 모습이었어요. 이런 역할에 부담도 느꼈을 거 같아요.
감사했던 게 저는 마주하는 인물이 정말 많았어요. 운영팀장으로서 자아도 있지만 엄마 미숙(윤복인 분)과 함께하는 딸로서의 자아도 있고, 아빠에 대해 생각하는 어린 세영의 마음도 남아있었죠. 재희(조병규 분)와 선후배 관계도 보여줄 수 있고, 사장님이나 구단주를 대하는 모습은 승수(남궁민 분)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하려 했어요. 그래서 프런트와는 동료의식이 많았고, 선수들을 보면서는 ‘저분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관계성들에 세영이 교집합으로 얽혀 있던 거 같아서요. 많은 분과 호흡할 수 있어서 제게는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각자가 다 너무 좋은 분들이어서요. 연기 합도 좋게 주고받을 수 있었고, 정말 든든했어요.
Q. 또한 세영이 단장 백승수와 상호 보완적인 모습으로 일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초반에는 세영과 승수가 서로를 몰랐기 때문에 발생하는 충돌이나 이견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세영은 기록원 시절부터 쌓은 능력이 있어서 상황 판단력도 빠르고, 관찰력도 좋다고 할까요. 잠깐 봤던 것들도 단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승수의 남다른 점을 가장 빨리 이해하고 가장 빠르게 편을 들어주는 인물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무조건적인 존경보다는 승수가 틀릴 때도 있다는 본인만의 주관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여서요. 이 캐릭터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홀로 설 수 있는 인물인 거 같아서 연기하며 마음이 든든하고 편했어요.

Q. ‘스토브리그’의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승수와 세영의 러브라인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저희 드라마는 프런트의 이야기지만 프런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다 투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 사는 이야기라서 사랑을 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색달랐죠. 드라마니까 무조건 ‘저 안에서 사랑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랑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잖아요. 하하. 어느 정도 거리를 지키면서 유능하게 살아가고요. 그래서 더 현실적이라고 느껴졌어요. 우리 드라마는 오피스 드라마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각각의 인간성을 드러낼 뿐 사랑까지 발전시키지 않는 점이 차별성 있었죠.
재희와의 러브라인이요? 설정상 재희는 외사랑을 하고 있죠. 하하. 그 부분이 애매하다고 생각했어요. 세영이 과연 재희의 사랑을 눈치채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면역이 없어서 눈치를 못 채고 철벽을 치는 건지 모호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호하게 연기했죠. 세영이 알아서 철벽을 치는 건지, 사랑에 대한 눈치가 없는 인물인지 알 수 없어서요.
Q. 극중 이세영과 서영주(차협 분)와 대치 장면이 큰 화제를 모았어요. 이 정도로 이슈가 될 거라 예상했나요?
제가 평소에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성격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까지 소리를 지르는 게 적절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선은 네가 넘었어!”라고 하기 전 비속어도 대본에 “‘지랄하네.”라고 마침표가 찍혀 있어서요. 어떤 톤으로 하는 게 효과적일지 집에서 여러 버전의 욕을 읊조리면서 연습했어요. 하하.
시청자들은 백 단장님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 같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세영이 대신 화를 내줘서 효과가 더 컸던 거 같아요. 세영을 연기하는 저로서도 그런 상황에서 옆에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대신 화내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고마운 경험이었어요. 컵을 던질 때 감독님이 서영주 바로 옆으로 위협적으로 던질지, 벽으로 던질지를 물어보셨어요. 우스갯소리로 포수니까 옆으로 던지면 받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말도 했죠. 하하. 그래도 세영이 공과 사를 지킬 줄 아는 캐릭터여서, 선수를 위협하는 게 세영 자신도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벽으로 던지겠다고 합의를 했죠.
Q. 배우들이 입을 모아 시나리오와 고증이 탄탄하다고 칭찬했어요. 연기할 때에도 한결 편했을 거 같아요.
이신화 작가님은 스스로를 ‘마일드한 야구팬이다’라고 하셨는데, 마일드의 뜻에 제가 모르는 의미가 있나 봐요. 하하. 전혀 마일드하지 않으시고, 워낙 취재를 열심히 하시고 오래 준비를 하신 게 매 순간 느껴졌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믿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복선도 잘 깔고 회수도 잘하셨는데, 시나리오를 정말 잘 쓰셔서 가능한 결과였던 거 같아요. 흐지부지 끝내는 게 아니라 암묵적으로 비유도 들어가면서 대조되는 부분도 있고요. 연기할 때 굉장히 신뢰할 수 있었어요. 특히 야구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미숙한 부분이라, ‘실제로 맞겠지?’ 하고 찾아보지 않아도 됐어요. 작가님이 워낙 오래 준비하셨으니까 오류는 없을 거라는 신뢰가 있었어요.
5부 하와이 로케이션 때 승수가 길창주(이용우 분)에게 입단 제안을 할 때 저는 재희와 떨어져 있어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나중에 방송을 통해 확인했거든요. 그때 승수가 길창주 선수에게 한 대사가 정말 좋았어요. “아무한테도 미움받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면 정말 절실한 건지 모르겠네요. 길창주 선수, 정말 절실할 이유가 없습니까?”라고 묻는데 제 마음에 돌을 던지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하는 일도 누군가는 사랑하지만 누군가는 미워하는 처지에 있어서요. ‘내가 조금 더 절실했다면 미움받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맞닿아서 더 좋았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전지훈련 때 임동규(조한선 분) 선수와 백 단장이 대화하는데, 세영이 돌을 들고 뛰어오잖아요. 그 장면의 세영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세영이 들고 있는 돌 크기를 고민했거든요. 하하. 손아귀에 다 잡히는 돌을 할지, 큰 돌을 가져올지 고민했는데 처음에는 손에 딱 맞는 돌을 준비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그런 돌은 가볍기도 하고 진짜 던질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큰 돌을 준비하는 게 위협용으로만 보일 거 같아서요. 하하. 그런 게 세영에게는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바꿨는데, 그 장면이 귀엽게 봐주시는 부분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그때 돌이 크다 보니까 들었는데 단장님이 “빵 들고 오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Q. 드림즈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마지막으로 드라마가 끝났어요. 결말은 마음에 들었나요?
종방연 때 배우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마지막회를 봤거든요. 관중석에서 세영이 단장님에게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곳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단장님이 “그런 거면 충분하다”고 웃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단장님이 세영에게 직접 웃어준 게 그때가 처음이더라고요. 저는 단장님의 웃는 모습을 방송으로 확인한 게 많았거든요. 하하. 고개를 돌린다거나 어이없어서 웃는 경우는 봤지만요. 직접적으로 세영을 향해 웃어주는 게 처음이라, 촬영하면서도 절로 눈물이 고이더라고요. ‘승수도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의 변화가 많구나’, ‘그런 사람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서로의 성장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는 경험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1화 때처럼 ‘스토브리그’ 자막이 뜨길래 ‘이렇게 끝나는 느낌이 드는구나’라고 1차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에 에필로그처럼 선수들 라커룸이 나오고 스탯이 나오는데 우러나오는 환호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멋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프런트와 선수가 나가는데, ‘우리는 앞으로 갈 길을 잘 갈 겁니다’라는 다른 엔딩이 있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여기에 잊지 않고 단장님이 미개척지를 여는 또 한 번의 엔딩이 연달아 나와서요. 마지막 회 엔딩을 보면서 벅차올랐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점층적인 엔딩이 만족스러웠어요.
Q. 결말을 두고 이세영이 단장이 됐는지를 추측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요. 박은빈 씨는 이를 어떻게 생각했나요?
촬영 당시에는 ‘세영이 단장이 됐을까?’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감독님도 “단장 같은 느낌이 난다”고 지나가듯이 말해주셨지만, 직접적으로 단장이 된다고 알려주신 건 아니어서요. 방송이 나가고 나서도 ‘세영이 단장이 된 건지 아닌지 열어두고 생각을 해주시는 게 앞으로의 방향에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6부의 제가 세이버스의 스카우트를 거절하면서 ‘드림즈의 영원한 운영팀장’이라고 했으니까요. 세영이 차기 단장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쁘기도 하더라고요. 능력 있는 여자니까 앞으로 더 승진할 일이 남아있을 거로 생각해요.
Q. 시청자들도, 배우들도 과몰입하며 ‘스토브리그’를 함께 즐겼어요. 이런 과몰입의 비결이 있다면요?
저희 모두가 연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리고 시청자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감정이입을 해주셨던 거 같아요. 저를 박은빈이 아니라 팀장님이라고 불러 주시고요. 이런 걸 보면서 저도 함께 물들어 갔던 거 같아요. 프런트 팀장님들끼리는 아직도 호칭을 못 정하고 팀장님이라 부르고 있거든요. 하하. 그분들은 심지어 두세 작품씩 함께 하는 분들도 있어서 정말 바쁘셨어요. 그 와중에도 우리 드라마를 사랑하는 게 전이되고 느껴져서요. 그래서 더 행복했던 현장이었던 거 같아요. 현장으로 출근하는 게 힘들고 피곤한 대신 정말 즐겁고, ‘오늘도 회의실에서 하루를 보내겠구나’라는 게 지겹지 않아서 고마웠어요. 초반만 해도 PPT 등 대회의실 신을 거의 종일 찍었거든요. 대사가 많은 배우 먼저 돌아가면서 온종일 맞추다 보면 진이 빠진 상태로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고요. 그런데도 다들 남이 연기할 때도 최대한 맞춰주려고 해주셔서요. 정말로 아름다운 팀워크였어요.
Q. ‘스토브리그’는 박은빈 씨에게 어떤 작품인가요?
2019년 하면 ‘스토브리그’가 생각날 거 같아요. 연말연시를 함께한 작품인데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줘서요. 다가올 미래는 불확실하겠지만 이 모임 그대로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으면 앞으로의 동력에도 많은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토브리그’를 떠올리면 ‘참 좋았지’라고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Q. 어느덧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어요. 다가올 30대를 그려본다면요?
제가 다섯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때 10년, 20년 후의 나를 그려보라고 하면 항상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30대를 구체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실제 그렇게 될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미래가 오지 않더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요. 항상 미래를 열어두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저는 20대 후반의 제가 어떤 배우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깊숙하게 해본 적 없었어요. 앞으로도 어떤 모습일지는 굳이 계획을 세우려고 하지 않아요. 그 과정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잘 안 된 작품을 할지라도 제가 선택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어떤 의미를 남기고 목표를 이뤘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