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현의 필름시럽] '터널' 인간이 지닌 존엄성, 그 붕괴의 경계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딸의 생일 케이크를 뒷좌석에 놓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에게 기름을 넣느라 의도치 않게 ‘만땅’을 채웠다. 불평 서린 얼굴이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뱉을 성격도 아니었다. 출발한 차를 붙잡은 노인이 물병 두 개를 건네자 그 정성이 고마워 받아 챙긴다. 아닌가? 이내 뒷좌석에 던져버리고 액셀레이터를 밟는, 정수(하정우 분)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정수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산이 무너졌고, 터널이 붕괴됐다. 그 안에 갇힌 정수는 미약하게나마 전파가 잡히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119에 신고를 한다. 이내 구출될 거라는 구조요원의 말. 이에 아내 세현(배두나 분)을 안심시키곤 타는 갈증에 물을 들이킨다. 그 때는 몰랐다. 그렇게 벌컥벌컥 들이킨 물이 자신의 생명수가 될 줄은.

영화 ‘터널’은 재난 영화다. 터널이 붕괴되고 그 안에서 살고자 발버둥치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무너진 터널 속, 정수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자동차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공간을 확보한다. 그 과정은 관 속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베리드’(2010)를 보는 듯 하다. 정우가 점차 행동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보는 이의 숨통도 트여나간다. 김성훈 감독이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끌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정수와 관객의 숨이 편해졌을 때 하정우의 원맨쇼가 펼쳐진다. 고립의 상황 속에서 보여지는 하정우의 연기는 그의 능청스럽고도 코믹한 매력을 모두 쏟아 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고 본다는 하정우표 먹방도 그려진다. 마치 ‘캐스트 어웨이’(2001)의 척 롤랜드(톰 행크스 분)가 배구공 윌슨과 감정을 나누듯, 폐쇄된 공간 속에서 그가 펼쳐내는 여유는 불안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결국 ‘터널’은 정수를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 정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정수의 상황과 하정우의 연기에 웃음이 나오겠지만, 그것은 풍자에 담긴 이 사회를 향한 비수다. 영화가 그리는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과 똑같기에 정수의 처지는 더욱 잔혹하게 다가온다. 지난 2014년 전 국민을 슬프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가 겹쳐지며 개탄을 더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터널 안의 정수가 존엄을 잃지 않을 때 터널 밖의 사람들은 한 인간의 가치를 점차 퇴색시킨다. 그 과정엔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정치적인 혹은 이해타산적인 셈법도 존재한다. 그렇게 터널 안과 밖의 세계는 둘로 나뉘어 돌아간다. 무너진 곳은 터널 안이었지만 정작 붕괴된 것은 안전한 세계에서 다수의 논리에 파괴당한 우리의 인간성이다.

그 경계에서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것은 정수의 아내다. 참담한 심정을 표현해낸 배두나의 열연은 영화 후반부를 짊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방송국을 걸어나올 때 보여지는 배두나의 표정과 눈물은 대사 없이도 그 큰 슬픔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하고도 남는다. 더불어 구조대장을 연기한 오달수, 장관을 연기한 김해숙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품고 적재적소에서 빛난다.

영화 ‘터널’은 오는 10일 개봉한다.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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