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현의 필름시럽] '고산자, 대동여지도' 두 눈은 호사를 누렸건만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대동여지도’의 역사적 가치는 상당하다. 세로 6.7m, 가로 3.8m의 크기를 자랑한다. 조선 전도 중 최대 크기다. 가로 세로 눈금 위에 지도를 그려 축척을 나타낸 방안지도이자 축적지도이며,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분첩절첩식으로 만들어 휴대성을 높였다. 목판의 휘어짐에 대비해 양면에 양각으로 새겨 대량생산할 수 있게 만든 실학정신도 갖췄다. 더불어 백성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끔 한 애민정신도 엿보인다. 그 위대한 지도를 만든 이가 바로 고산자 김정호(차승원 분)다.

강우석 감독이 자신의 스무 번째 영화로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꺼내 들었다. 언젠가부터 매번 “영화를 찍다 죽을 뻔 했다”고 말하는 감독이지만 영화의 오프닝 속에 녹아 든 영상을 보고 나면 감독의 말이 엄살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다.

무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부터 강원도 양양, 여수 여자만, 북한강을 넘나드는 제작진의 여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방점을 찍는다. 어찌하여 강 감독이 “백두산 천지 장면에 CG는 없다”고 거듭 강조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가늠케 할 정도의 장관이다. 더불어 5개월을 기다렸다는 합천 황매산의 철쭉은 그 아름다움에 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기 힘들다.

허나 너무 많은 거리를 오간 탓일까? 김정호의 발걸음을 따라 호사에 가까운 풍광을 눈에 담았으나 이후 걸음걸이가 느려진다. 목판 제작과 천주교 박해,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김씨 세도의 대립까지 나름의 역사적 굴곡과 등장인물의 갈등을 그려내지만 전개 속도가 더디고 지루하다. 본래 묵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강우석 감독의 정공법이지만 묵묵하게 걷기엔 김정호가 걸어온 길이 너무 방대했고, 그에 비해 남아있는 사료가 너무 부족했던 이유도 있었을 터다.

여기에 단조로운 캐릭터 설정이 극의 지루함을 거든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지도장이로 살아가는 계기가 됐을 수 있겠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목적에 공감이 가지 않아 그의 숭고한 애민정신도 감동이 줄어든다. 나아가 “허허” 하고 사람 좋은 웃음만 짓는 차승원의 모습 또한 영화가 그리고자 했던 김정호란 인물의 방향에 의문부호를 남긴다. 더불어 주변 인물인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 일가, 딸 순실, 여주댁 등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기능하는 등장인물들도 다소 아쉽다.

나아가 강우석 감독이 뚝심있게 밀어붙였다는 유머 코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차승원이 출연 중인 예능 ‘삼시세끼’를 언급하는 것과 미래의 지도를 이야기하며 ‘네비게이션’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요즘 유행한다는 아재개그로 승화시키자니 아재개그 또한 모든 이에게 환영 받는 유머가 아니라는 것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 극이 무겁게 흐를 것을 염려한 판단이었겠으나 극이 지루한 것은 비단 그 이유 뿐은 아니었을 터, 차라리 앞부분에 힘을 줬던 아름다운 풍광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았을까. 오는 9월 7일 개봉.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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