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현의 필름시럽] '걷기왕', 꼭 달릴 필요 있어요? 쉬어간다 해도 불안해 말아요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요즘 SNS를 보다 보면 자신의 삶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만큼 SNS 위에는 예쁘고 잘생긴, 또는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에 여행 다니는 사진이 넘친다. 사실 현실이 마냥 행복에 넘치는 건 아닌 것도 사실. 하지만 내가 올리는 사진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나의 행복을 남들에게 어필한다. 그리고 또다시 남의 행복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비교하곤 한다. 그렇게 우린 행복강박증에 빠진다.

‘걷기왕’의 만복(심은경 분)의 삶은 행복하진 않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 그 느리다는 소달구지에만 올라타도 구토로 이어진다. 상황은 웃기지만 곱씹어보면 절망적이다. 예로부터 인간의 문명은 탈 것의 진화에서 이뤄졌다. 발전의 톱니바퀴 위에 안착할 수 없는 만복의 인생은 남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복이의 삶은 손가락질을 받는다.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사회적 잣대로 재단하곤 한다. 그것이 꼭 틀린 것도 아니다. “열정을 가지고 꿈을 찾아 나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도 그랬다. 결국 만복이에게 경보라는 꿈을 선사했다. 하지만 강요가 될 땐 그 또한 억압일 뿐이다. 사람에게 꿈은 필요하겠지만 그 꿈은 오롯하게 나만의 것이다. 이 세상에 남이 대신 꾸어주는 꿈이란 없다.

남들보다 느리게 가고 있는 만복이의 걸음이지만 영화 속에선 그 속도가 마음껏 변주 된다. 만복이의 감정에 따라 누구보다 빠르기도, 누구보다 힘차기도 하다. 그리고 아픈 걸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달리기가 아니기에 관객들은 무리 없이 그 발걸음에 동행한다. 만복이를 응원하고 함께 웃는다. 비록 만복이의 걸음의 끝에 대해 서로의 감흥이 다를 수 있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바라는 행복의 형태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일 터다.

아역 시절부터 자신의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심은경이기에 더 느끼는 바가 큰 영화다. 심은경은 “’걷기왕’을 통해 많은 힐링을 받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어디 심은경뿐일까. 자신의 꿈을 위해 지금도 달리고 있을 사람이라면 ‘걷기왕’은 시원한 나무그늘이 되어 준다. ‘걷기왕’이 이야기하는 바는 “꼭 꿈을 이룰 필요가 있어?”라는 허무한 속삭임이 아니다. “잠시 쉬어간다 해도 불안할 필요 없어”라는 다정한 다독임이다.

주제가 다소 무거울진 몰라도 영화는 한없이 경쾌하다. 특히 캐릭터가 살아있고 정감이 간다. 만복이를 비롯해 수지 선배(박주희 분), 육상부 코치(허정도 분), 만복의 아빠(김광규 분)와 엄마(김정영 분)까지 조화롭게 만복이의 걸음을 응원한다. 유일한 악역이랄 수 있는 담임 선생님(김새벽 분)도 미운 캐릭터가 아니다. 그리고 ‘걷기왕’의 내레이터 ‘소순이’(안재홍 목소리)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더불어 영화 속에 흐르는 OST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니 필연적으로 들릴 것이다. 특히‘타이타닉’(1997)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며 호기롭게 외쳤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 위에 흘렀던 ‘My heart will go on’. 그 장엄한 음악이 리코더로 변주되는 순간 폭소가 터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서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비록 잠시 음이탈이 날 지라도 우리 모두가 세상의 왕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걷기왕'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사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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