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리의 1열중앙석] 뮤지컬 '구텐버그', 절망 속에서도 '모두 함께 꿈꿔요'
[임유리의 1열중앙석] 뮤지컬 '구텐버그', 절망 속에서도 '모두 함께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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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공연 시작 5분 전, 아직 객석의 불이 채 꺼지지도 않았는데 무대 위로 두 배우가 등장한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하는 관객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세트를 정리하고, 소품들을 늘어놓느라 분주하다. 가끔 객석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기도, 속닥거리기도 한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이미 시작됐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리딩 공연의 형식을 띄고 있다. 리딩 공연은 본 공연이 올라가기 전 제작자 혹은 투자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선보이는 공연을 말한다. 이에 뮤지컬 '구텐버그'를 보러 간 관객은 배우들이 하는 공연을 보러 간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극중극 '구텐버그'를 보러 간 제작자 혹은 투자자 입장에 놓이게 된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건 두 명의 배우와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전부다. 자신들을 '버드'와 '더그'라고 소개하는 두 청년들은 극중극 '구텐버그'를 직접 쓰고 작곡한 작가와 작곡가다. 자신들의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고자 하는 부푼 꿈을 가지고 관객 앞에 선 것이다. 유명 배우를 섭외하지도, 그럴싸한 극장을 구하지도 못했지만 오늘 이 자리에는 브로드웨이의 유명 프로듀서가 직접 공연을 보러 와 있다.  

이후 버드와 더그는 약 20명에 달하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단 둘이서 모두 소화해낸다. 각 배역의 이름이 쓰여진 캡 모자를 쓰면 그 사람이 된다는 설정이다. 극중극 '구텐버그'에 등장하는 주인공 구텐버그를 비롯해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 헬베티카, 악의 중심축인 사악한 수도사, 아이부터 어른까지 연령도 성별도 다양한 마을주민들까지. 이 모든 등장인물들을 연기하다 보니 극의 중반이 채 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관객이 그들의 꿈에 공감하고, 또 응원하게 되는 건 바로 이 땀방울의 힘이다. 출연 배우들이 "땀 흘린 만큼 박수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선보이는 극중극 '구텐버그'의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다. 인쇄술의 혁신을 이뤄낸 구텐버그가 실은 와인 제조자였다는 설정이다. 그를 사랑하는 여인 헬베티카를 포함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독일의 작은 마을 슐리머의 주민들을 위해 구텐버그는 와인압착기를 개조해 인쇄기를 발명한다. 하지만 이를 원치 않는 사악한 수도사는 헬베티카를 이용해 인쇄기를 파괴해버리고 만다. 극중극에서조차 꿈을 이루려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하지만 커피숍과 양로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버드와 더그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관객은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배우들이 있기에 작품 속 버드와 더그는 설득력을 가진다. 뮤지컬 '구텐버그'에서 버드와 더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이 아닌, 극중극 '구텐버그'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버드와 더그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 버드와 더그에게 보내는 응원은 곧 힘든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위로와 응원일 지도 모른다.

이번 공연에는 지금까지 '구텐버그'에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캐스트들이 합류했다. 버드 역에 김신의, 조형균, 더그 역에 정문성, 정동화가 함께 한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기에 애드리브마저도 능수능란 자유롭다. 실수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그 때문에 어느 조합의 어느 공연을 봐도 매번 새롭고 즐겁다.  

극중극 '구텐버그'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든 하지 못하든 최선을 다한 버드와 더그는 아마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절망이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꿈꾸는 것일 터다. 버드와 더그의 땀방울에 브로드웨이 유명 프로듀서가 응답했듯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에게도 누군가가 응답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내년 1월 2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사진=쇼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