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현의 필름시럽] '판도라' 죄악은 현실이, 희망은 허구가 된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
[권구현의 필름시럽] '판도라' 죄악은 현실이, 희망은 허구가 된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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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사람마다 소름을 느끼는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구는 귀신이나 심령에 약하고, 누구는 피가 튀는 잔인한 상황에 눈을 감는다. 또는 놀이기구나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비명을 지르고, 집 안을 기어가는 벌레에 몸서리 치기도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일례로 하나를 더 꼽자면 예언이나 예상이 적중할 때다.

영화 ‘판도라’는 그래서 소름 돋는다. 아직 적중하진 않았지만 ‘혹여 영화가 재앙을 예견했던 성지가 되지 않을까’라는 공포를 낳는다. 그렇게 영화 ‘판도라’는 우리나라에 당장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을, 그리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여러 재난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 지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우리나라 원전의 현실을 자막으로 경고한다.

‘판도라’의 이야기는 직선적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에 지진이 일어났고, 40년이란 세월 속에 낙후됐던 발전소는 철저히 파괴된다. 방사능이 노출 됐고,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융합로 폭발로 인한 핵 재앙이 일어날 상황이다. 하여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고, 민간인은 피난을 가고, 구조대는 사람을 구하러 뛰어다닌다.

참 간단한 구조인데 흐름이 그리 쉽지가 않다. 재난 앞에 무너진 시스템은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무능한 정부는 콘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책임 회피가 우선이며, 총리가 실세가 돼 무능한 대통령을 좌지우지한다. 사고를 대비해 만들어진 대응책들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여 ‘판도라’의 재난은 너무도 무섭다.

‘판도라’의 무서움을 배가시키는 것은 ‘기시감’이다. 분명 어디선가 느끼고 보았던 상황이다. 제작기간이 4년이 걸린 영화니 박정우 감독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경주 지진,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번 국정농단까지를 예견했을 리 만무하다. 허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관점에서 시작했던 ‘판도라’는 지금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영화가 됐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다소 아쉬운 것은 박정우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희망’이다. 프쉬케가 열었던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는 온갖 죄악을 쏟아내지만 마지막엔 희망을 남겨놨다. 영화 ‘판도라’도 마찬가지다. 재난은 정의로운, 혹은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치유된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위안이고 희망일 터다. 하지만 절로 지금의 현세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며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씁쓸함을 전한다.

그래서 아쉬운 이가 있다면 ‘재혁’을 연기한 김남길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15분에 가까운 김남길의 독백신이다. 배우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배우에게 연기적 역량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판이 깔린 셈이다. 이를 김남길은 최선을 다한 연기로 보답해냈다.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포인트다. 

하지만 혹자는 이 부분을 신파로 느낄 수도 있다. 신파란 결국 억지스런 감동을 밀어 넣는다는 이야기. 김남길의 연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억지라 느껴졌다면 그건 현실 탓이다. 그런 호인이 우리 주변에 있기 힘들다는 게 원인일 터, 만약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회였다면 우린 재혁을 보면서 크게 공감하고 많은 눈물을 쏟았을 지 모른다. 그리고 희망을 느꼈을 지 모른다. 죄악이라 그려냈던 사실이 현실이 되고, 희망이라 그려냈던 모습이 허구처럼 비춰지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더 슬플 따름이다.

‘판도라’의 모습이 현실과 맞닿아 있는 건 제작진의 분투 덕이다. 박정우 감독은 사실에 입각하여 원전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조사했고 이를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65%를 할애한 CG는 영화의 사활이 걸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훌륭하게 표현됐다. 배우들의 노고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영화 ‘판도라’는 오는 7일 개봉한다. 러닝은 136분. 12세 관람가.

 

사진=NEW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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