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판도라' 문정희 ② 현실과 맞닿은 영화,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배우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이뤄지는 인터뷰는 신인 배우가 아닌 이상 대개 여러 매체가 함께하는 라운드 인터뷰이기 마련이다. 최근 2~3년 사이 그런 형태가 됐다. 매체 수도 늘어났고, 홍보의 입장에서도 정해진 기간 내에 많은 매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정희는 1:1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각 매체의 색깔도 다르고 기자들 마다 성향도 다른데 그 사이에 위치하기가 민망해요”라는 것, 그리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요”라는 이유였다. 또 하나 붙이자면 “다음에 만날 때 정으로 이어지는 게 좋아요”란다. 그만큼 사려 깊고, 정도 많은 배우가 바로 문정희였다.

문정희는 이미 ‘연가시’를 통해 재난 영화를 경험한 바 있다.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과 함께다. 물론 ‘판도라’와 ‘연가시’의 간극에는 ‘숨바꼭질’, ‘아빠를 빌려드립니다’(2013) ‘마마’, ‘카트’(2014), ‘달콤살벌 패밀리’(2015) 등 여러 작품이 있다. 스릴러부터 코미디, 드라마까지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지금 ‘판도라’를 통해 원전의 무서움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이제 재난 영화는 좀…”이라며 미소짓는 문정희와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어머니, 도련님, 그리고 아들과 함께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정혜’를 연기한 문정희는 김영애와 고부간의 관계를 그려내며 보수와 진보, 구 세대와 신 세대의 갈등을 표현해냈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열연에 임해준 문정희에게 영화 ‘판도라’와 현실, 그리고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들어봤다.

▶ 1편에서 이어

문정희가 ‘판도라’에 대한 제안을 받았던 건 ‘연가시’(2012)의 촬영 때였다. 그때 박정우 감독은 “원자력 발전소의 재난을 그리고 싶다”라고 말했고, 이에 문정희는 “또 재난이요?”라고 물었지만 결국 영화는 만들어졌고, 관객과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문정희는 “감독님이 자랑스럽고, 기특해요”라면서, “역시 재난 영화를 찍어보신 터라 현장이 익숙하고, 통솔력도 남달랐어요. 모두가 전쟁터 같이 바쁠 때 가장 여유 있으셔요”라고 말했다.

“’연가시’라는 작품이 워낙 센 작품이었어요. 특히 그 소재가 너무도 특이했죠. 물론 올해 개봉한 ‘부산행’도 소재가 좋았지만 우리는 현실의 소재를 상상력으로 소화했어요. 그 과정이 참 재미있었고 새로운 도전이었죠. 그리고 역할에 대한 욕심도 있었어요. 반면 이번 ‘판도라’는 박정우 감독과 재난 영화라는 교집합이 있지만 전체적인 의미로 다가온 작품이에요. 제게 있어서는 조금 다른 접근이 됐던 영화 같아요”

전체적인 의미란 바로 ‘판도라’가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시발점은 2011년 발발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고였고, 바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는 방사능의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후쿠시마 땐 정말 모두가 바짝 긴장했었잖아요. ‘우리에게 피해가 있으면 어떡하나’, ‘또 그쪽은 어떤 피해가 있으려나’, 정말 먹거리부터 예민했던 때였어요. 그런 것들이 시나리오에 담겨 있었고요. 하지만 지진 부분은 사실처럼 와 닿진 않았어요. 그래서 극영화라고 전제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안전에 대한 대비책, 매뉴얼 같은 것들도 엄청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직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 아마 모든 배우들이 시나리오에서 공감했던 지점일 거예요”

하지만 영화가 그리려던 가상의 설정은 우리의 현실이 됐다. 원전의 노후화는 오랜 세월 언급된 상황이었고, 경주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컨트롤 타워 부재가 전하는 참혹함을 느꼈고, 지금은 국정농단의 상황에 빠져있다. 박정우 감독이 예언가도 아닐텐데, 그 모든 영화적 설정이 현실화 됐다.

“사회 풍자와 가족애를 그린 가족 영화일 줄 알고 했는데, 후반 작업할 때 지진이 일어났고 10월 이후에 이런 일(국정농단)이 터졌죠. 먼저 지진 났을 땐 진짜 깜짝 놀랐어요. 당연히 후반 작업 중인 ‘판도라’가 생각났고요. 그날 밤에 감독님에게 ‘영화 같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감독님이 ‘우리가 의도한 게 아닌데 이렇게 되니까 더 무섭다’고 답했고요.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영화를 제작하던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다 드러났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 관객들이 ‘맞아, 딱 지금이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들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 ‘판도라’는 현실을 그린 영화로만 그치면 안 될 작품이다. ‘판도라의 상자’의 마지막엔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의도 또한 ‘이런 일이 일어 나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오히려 현실의 상황이 너무도 심각해 영화의 메시지를 저해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지금 시국을 보면 각자의 의식들이 모여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돼요. 다행이죠. 에너지원 같은 부분도 시각을 바꿀 수 있고요. 우리 영화를 통해 많은 인재(人災)들이 예방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하는 문정희. 조용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지만 마음 속의 강단은 분명히 전해졌다. 지난 11월 9일 있었던 ‘판도라’ 제작보고회에 배우 강신일, 김대명과 함께 노란 리본을 옷에 달고 참석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횡행하는 시국 속에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만큼 소명 의식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일 터다.

“그 아픈 기억에 저만 마음이 아프겠어요? 그 부모님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거예요. 기본적으로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라도, 저 자신한테도 잊지 말자라는 결심 같은 자리였어요. 실제로도 세월호 팔찌도 잘 차고 다녀요. 국민의 한 사람이니까요. 제작보고회를 이용한 건 아니고요. 그 행동이 미디어를 통해 확대가 되는 것이 불편했어요. 제가 마치 소셜테이너처럼 비춰졌는데, 개인적으로, 저만이라도 잊지 말자라는 뜻이었어요”

그렇게 문정희는 광화문으로 나갔다. 자신의 SNS를 통해 당시 사진을 올렸고 이 또한 화제가 됐다. 미디어를 통한 확대 해석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터. 미국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의 할리우드 배우에겐 당연시 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선 터부시 되는 것도 다소 아쉬운 일이다.

“일종의 금기 같아요. 미국 쪽은 자신의 정치색을 낸다는 것 자체가 용기가 아닌 평범한 일 같아요. 우리나라에선 블랙리스트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조금 씁쓸하죠. 저도 제가 앞장서서 나가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기엔 제가 잘 모르는 쪽이고요.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 가지로 왜곡되니까 조심스럽기도 해요. 한편으론 그런 마음이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도 조금 그렇고요. 이번 ‘판도라’가 참 현실과 맞닿아 있어요. 관객들도 그걸 느끼시고요. 저희 영화에 세월호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 이미지를 떠올리시는 거죠.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인 것 같아요. 마음 아픈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아파해 주시니까 희망도 있을 것 같아요”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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