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현의 필름시럽] '용순' 꿈 꾸지 않아도 어여쁜, 사랑 받아 마땅한 이름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누구에게나 싱그럽게 푸르른 시기가 있다. 너무도 찬란히 빛나 눈이 아플 수도 있는 그때, 비록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야겠지만 그 빛은 가슴 속에 오롯하게 남아 평생을 추억케 한다. ‘용순’의 18세, 고등학교 2학년의 시기도 그런 시간이었다.

‘용순’은 성장 영화다. 용순(이수경 분)의 고2 여름방학은 누구보다도 뜨겁다. 옆 학교와 육상 친선 대회를 준비하며, 뙤약볕 아래를 달린다. 턱까지 차오르는 호흡과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여느 성장 영화에서 봐왔던 지점. 허나 영화 ‘용순’은 “청춘의 꿈은 그 어느 때 보다 찬란하다”는 영화가 아니다. 뜀박질로 터져나가는 심장이 아닌, 사랑에 대한 설렘과 고민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이야기 한다.

용순의 사랑은 위험하다. 학교 체육 선생님과의 교제다. 어쩌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수위의 표현이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이는 영화 밖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영화 속 용순의 사랑은 당당하고 담담하다. 연애는 즐겁고, 실연은 아프다. 연적의 존재는 질투를 일으키고, 우유부단한 남자친구의 행보는 답답할 따름이다. 여느 보통의 사랑과 똑같기에 우리는 용순의 사랑을 응원한다.

그런 응원을 불러일으키는 건 신준 감독의 묘수 덕이다. 민감한 소재에 직접 다가가지도, 정확한 사실 증명도 하지 않는다. 모든 건 관객의 선택에 맡겨 놨다. 두 사람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로 또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로 해석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두 사람의 교제에 대한 진실 여부까지도 물음표를 던질 수 있을 영화다. 영화를 조목조목 따져본다면야 정답을 얻을 수 있겠으나, 그러기엔 ‘용순’은 너무 따뜻하고. 유쾌하고, 청량한 영화다.

어쩌면 용순은 되바라진 학생이다. 물론 이 또한 영화 밖 어른들의 시선이겠다. 화가 날 땐 선생님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를 발로 차고, 몽골인 새엄마(얀츠카 분)를 데리고 온 아버지(최덕문 분)에게 온갖 시비를 건다. 새 엄마가 선물한 자전거가 부서지는 건 당연할 일이다. 자신을 짝사랑 하는 소꿉친구의 마음엔 눈을 감고, 자신의 사랑만을 쫓는다. 허나 학생이란 잣대를 거둔다면? 그저 감정 표출이 솔직한, 혹은 이기적인 사람 정도겠다.

그래서 열여덟이란 나이는 참 좋은 시절이다. 그 모든 이기적인 행동들이 이해와 용서를 받는다. 이를 넘어 따뜻한 포옹을 받는다. 언제나 용순의 옆을 지키는 친구 문희(장햇살 분)와 빡큐(김동영 분), 그리고 아버지와 새엄마까지, 알고 보면 용순은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단지 눈 앞의 사랑을 보느라 큰 사랑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언젠가 눈을 멀게 했던 사랑의 불씨가 꺼지는 순간, 더 따뜻했던 사랑으로 치유 받을 용순이다.

그래서 ‘용순’은 성장 영화다. 영화는 용순에게 공부를 하라고, 꿈을 찾으라고, 행복하라고 종용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바라보고, 옆에서 안아줄 따름이다. 그 안에서 용순은 잘 성장해 나간다. 영화가 따뜻하고 상쾌하고 청량하게 느껴지는 건 누구에게나 찬란했던 그 시절, 모두가 바랐던 주변의 시선을 그려내기 때문일 터다.

영화 제목이 ‘용순’인 만큼, 영화는 철저하게 용순 위주로 이야기한다. 그 역할을 다해내는 것은 배우 이수경이다. 1996년 생의 이수경은 외모부터 말투, 연기까지 딱 18살의 싱그러운 용순을 그려냈다. 질풍노도라고 하는 사춘기의 너울대는 감정을 표정과 대사로 잘 표현해냈다. 특히 신준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는 찰지는 대사들을 기가 막힌 충청도 사투리로 소화해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대사 맛은 배우가 들였을 공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대명컬처웨이브상 수상, 오는 8일 개봉.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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